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최근 임금협상을 끝냈다. 평균 11만여 원의 기본급 인상에 3000만 원에 가까운 일시금. 역대급 임금 인상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10조 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으로 실적 신기록을 써냈다. ‘성과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것이 기업 운영의 지당한 원칙이라면 이번 임금인상은 온당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성과가 오롯이 현대차 노사의 힘으로 일궈낸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현대차 노조의 주력은 ‘대공장’이라 불리는 완성차 공장의 근로자다. 울산공장을 비롯한 대공장에서는 납품된 부품을 조립해 차를 완성한다. 최종적인 조립 품질은 이들의 손에 쥐어져 있지만 따져보면 끝단의 작업일 뿐이다.
차 생산은 복잡다단한 납품 구조를 시공간적으로 종합 관리하는 작업이다. 평균 연봉 1억 원이 넘는 대공장 근로자의 고임금 뒤편에서 한국 차 산업의 가격 경쟁력을 떠받치는 것은 바로 수백, 수천 곳의 협력업체다.
협력업체의 재무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완성차 기업이 높은 납품 단가를 용인할 이유는 없다. 수시로 단가를 낮추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이들에게는 인건비 지급 여력이 별로 없다.
협력업체 근로자의 임금은 대공장 근로자의 절반은커녕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대차 생산직 모집에는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지원자가 몰렸지만, 협력업체는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공장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다.
서로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비슷한 임금을 요구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완성차 기업과 협력업체처럼 긴밀하게 연결된 기업의 임금 격차가 너무 크다면 일방의 희생에 기반한 착취 구조 아니냐는 비판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공장 노조 내부에서는 협력업체를 아우르는 산별노조를 구축한 독일과 달리 기업별 노조의 벽에 갇히면서 한국의 노동운동이 실패했다는 담론이 흔히 제기된다.
이런 현실 속에 한국 완성차 공장에는 ‘상주원’이라는 특이한 존재가 생겨나기도 했다. 납품 보조 역할로 분류되는 이들은 협력업체가 생산한 부품을 완성차 공장에 공급하는 연결 지점에서 일한다. 대공장에서 일하지만 완성차 기업 소속은 아닌 근로자.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처우가 판이해 다른 신분으로까지 분류되는 이들은, 한국 완성차 노조의 그늘이다.
수만 명의 조합원과 파업이라는 무기를 손에 쥐고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한국의 완성차 노조도 실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너무 이기적이라는 사회적 지탄이 이어지면서 무리한 파업으로 판을 깨지는 않는 실리적인 임금협상이 큰 흐름이 됐다. 현대차 노조는 5년 연속으로 분규 없이 임금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사람과 조직은 누구나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한 번씩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전기차 전환으로 글로벌 완성차 기업은 생존을 건 가격 경쟁에 나서고 있다. 그럴수록 협력업체들은 더 큰 단가 압박을 받으며 차 산업을 지탱해야 할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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