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7〉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2일 23시 45분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 자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김사인(1956∼ )



소설가 이태준의 수필 중에 ‘가을꽃’이라는 짧은 글이 있다. 거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가을꽃들은 아지랑이와 새소리를 모른다.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그들의 슬픔이요 또한 명예이다.’ 갑자기 가을꽃이 짠하면서도 거룩하게 느껴진다. 이태준이 말한 것은 비단 꽃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짚어낸 가을꽃의 속성에서는 사람의 태도라든가 인생 같은 것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꽃 하나를 놓고도 세월이라든가 우리네 삶까지 읽을 수 있다.

김사인의 이 시도 가을꽃을 제목으로 삼았지만, 사실 우리는 이 시의 주인공이 코스모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진짜 주인공은 코스모스처럼 가볍고 여윈 몸으로 인생을 걸어가는 어떤 사람. 소박하게 빈손이 되어 살았던 어떤 사람이다. 그런 삶이 팍팍하지 않았을 리 없다. 시인은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코스모스를 보며 눈물짓는 한 인간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저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던 고향으로 돌아가 위로받고 싶다.

이 시 한 귀퉁이에 고단한, 그리고 고단함을 견디는 우리가 있다. 그러니까 기꺼이 돌아가자. 추석에는, 코스모스의 한 줄기 위로를 찾아서, 가을꽃이 피어 있는 그곳으로.

#이태준#가을꽃#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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