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동료, 조카 용돈 주는 것도 주저하게 돼
주위의 위로와 조언도 가시처럼만 느껴져
추석은 서로 격려하고 감싸 안는 그런 날
스스로 작아지거나 위축되지 않았으면
늦은 오후 메시지가 왔다. 친하게 지냈던 옛 회사 동료였다. 연락을 안 한 지가 꽤 되어 궁금하던 차였는데 동료가 먼저 만나기를 청하였다. 몇 년 전 퇴직한 나와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만난 자리에서 처음 나온 이야기는 명절이었다. 마침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아 가볍게 대화를 시작하였다.
“명절에 어디 가요?” 나의 질문에 동료가 대답했다. “명절? 글쎄…. 고민 중이야.” 당연히 본가에 갈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른 답을 들어 살짝 당황했다. 동료는 뒤이어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퇴직하고 나니 하다 못해 명절도 예전 같지 않더라고….” 그러면서 지난 설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설은 동료가 퇴직 후 처음 맞는 명절이었다. 작년 연말에 퇴직을 했으니 퇴직 후 불과 몇 주가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상황이 이전과 달라져 양가에 오가는 시기와 차편부터 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명절 전날에 본가에 가서 하루를 자고, 명절 당일 오후에 처가에 들렀다 왔거든. 아내는 먼저 가서 음식 준비를 했고, 나는 느지막이 가서 저녁을 먹었지.” 동료는 회상하듯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출근할 회사도 없는 상황에서 따로 이동하는 게 안 맞다 생각되더라고. 혼자 집에 있어 봐야 무료한 시간을 보낼 게 뻔한데, 다 늦게 혼자 가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일찍 가자니 멀뚱히 있을 것 같고. 하여간 머리가 복잡했어.”
동료는 고민 끝에 본가는 이전처럼 가고, 처가에서만 하룻밤을 더 머물기로 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처가에서 기어이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본가에서 차례를 지내고 늦은 오후 처가에 도착해 보니 처형 식구들이 먼저 와 있었다고 말했다. 도착하자마자 전에 없던 목소리로 반갑게 맞아주는 처형의 모습은 그 얼마 전 작은조카가 대학에 합격해서 그런 듯 보였다고 했다. “이건 뭐, 주인장이 따로 없더라고.” 음식을 내오는 데도 신나 하고, 큰 걱정 덜었다며 아들을 추켜세우는 처형의 모습을, 동료는 잔칫집 주인과 비교해 가며 설명했다. 조카 역시 싫지 않은 표정으로 어른들 사이를 괜히 오가는 것이 그냥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도 했다.
‘용돈이라도 주어야 면이 서겠지?’ 그런 생각으로 지갑에 얼마가 들었는지를 가늠해 보니 다행히 찾아 둔 지폐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현금이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전에는 하지 않던 생각이 들었다며 씁쓸해했다. “막상 용돈을 주려니 얼마를 줘야 할지 고민되더라고. 대학까지 들어갔는데 어떻게 2, 3만 원만 쥐여 줘? 그렇다고 덜컥 10만 원을 주기도 그렇고….” 그렇게 말하는 동료의 표정은 당시로 되돌아간 듯 수심에 차 있었다. 듣는데 이전과 다른 주머니 사정으로 주저했을 심정이 고스란히 와닿았다. 동료는 결국, 체면도 있고 해서 넉넉히 챙겨 주었지만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조카한테 주는 용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당장 고정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계획 없던 지출을 하고 난 후 쪼들릴 걱정이 들었다고 했다. 처가에서 괜히 자고 가자 했나 싶기도 하고, 다른 조카들은 언제 오는지도 묻게 되는 자신의 모습이 처량맞았다고 말하는데 딱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았어. 바빠서 못 온다던 동서가 오니까 분위기는 또 달라졌지.” 동료는 테이블 위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말을 이어 나갔다. 동료의 동서에 관하여는 이전에도 들은 기억이 있다. 동료와는 한 살 차이로 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건실한 공장을 운영하는 처제의 남편이었다. “동서가 나한테 요즘 뭐하면서 사는지 묻더라고.” 동료는 뭐가 급했는지, 사위들끼리 술자리를 시작하자마자 자신에게 퇴직 후 근황부터 묻는 동서가 불편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주변에 퇴직한 친구들이 하나같이 힘들어한다는 말을 할 때는, 더욱 그런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동서의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위로도, 당분간 쉬시라는 조언도, 모두 거북하게 들린 모양이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가시처럼 생각되었고,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을 피하고만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밤에, 집에 왔어. 더 있기가 힘들더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괜히 속 좁게 굴었나 싶기는 한데, 좌우지간 명절이 명절이 아니었어.” 동료는 침울한 표정으로 설에 관한 이야기를 마쳤다.
듣고 있는 내내 남 일 같지 않았다. 나 역시도 동료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퇴직 후 맞은 명절에서, 아니 명절뿐 아니라 크고 작은 경조사에서 친척들을 만날라치면 더럭 겁부터 났다. 요즘 내가 어찌 지내는지를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혹시 내 모습이 추레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짐짓 걱정되고 작아졌다. 이를 숨기기 위해, 상대에게 크고 강하게 보이려 깃털을 한껏 펼쳐대는 공작새처럼 하지 않아도 되는 과한 지출을 한 적도 있다. 특히 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에는 더욱 그랬다.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까 전전긍긍하는 사이 정신은 피폐해졌고, 그 끝에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명절에 관해 내가 내린 결론이 있다. 명절은 고단한 삶을 사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힘을 내게 만드는 우리 선조들의 선물이다. 오랫동안 뵙지 못한 부모님께 못다 한 효도를 하고, 따로이 사는 친지들과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정을 나누는 푸근하고 온기 넘치는 날이다. 내 형편이 여유 있지 않아도 나의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아도 서로 격려하고 감싸 안는 그런 날이다. 만약 그러한 명절의 본뜻은 잊은 채 스스로 작아지거나 위축되어 그 의미를 퇴색시킨다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명절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진다면 이는 스스로를 생각하는 전과 다른 내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뿐이다.
퇴직은 누구나 지나는 인생 여정의 한 구간이다. 열심히 살아온 과거에 대한 훈장이자 또 다른 미래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그런 마음이면 올 추석에 뜨는 보름달이 더 크고 환하게 보일 것 같다. 부디 내년 한가위가 오기 전에 모든 이의 바람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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