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3일 단식을 중단했다. 이 대표는 21일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면서 곧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다. 그는 올해 6월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했는데, 체포동의안 표결 전날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 사실상 ‘부결 호소문’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체포동의안 가결은 정치 검찰의 공작 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포함 범야권에서 최소 29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은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 원칙을 깨고 부결 호소를 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펼쳐질 여야 혁신 경쟁의 신호탄이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가결 직후 “방탄 정치 끝, 정치 혁신의 시작”이라며 “국민의힘도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밝혔다. 표결 처리 전 만난 여당 관계자들은 ‘이번에도 부결’을 예상한 듯 추석 밥상에 ‘방탄 정치’를 올릴 생각에 느긋한 눈치였는데, 민주당이 ‘이재명의 늪’에서 벗어날 첫걸음을 떼고 먼저 치고 나갔다. 민주당을 이 대표와 묶어 ‘방탄 정당’이라 비판하며 반사이익을 누려온 여당은 본격 혁신 경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여당은 혁신에 앞서 원칙을 지켰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미 스텝은 꼬여 있다. 국민의힘은 최근 김태우 전 서울 강서구청장을 다음 달 11일 치러지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로 내세웠다. “귀책 사유가 있을 경우 무공천 한다는 원칙을 깨면 총선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서 무공천에 무게를 두더니 한순간 뒤집어 버렸다. 결국 김 전 구청장이 5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구청장직을 상실하고도, 3개월 만에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되자 강서구청장직에 재출마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원칙을 깬 후 국민이 이해할 충분한 설명이 없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최근 강서구를 찾은 자리에서 “구중궁궐 청와대에 숨어 도둑질하는 것을 보고 모른 척 묵인하는 게 맞느냐”며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옹호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대통령이 신임하는 힘 있는 여당의 구청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김 대표를 두고 당내에선 “당이 반성해야 한다. 이기더라도 크게 이겨선 안 된다”, “무공천을 뒤집을 명분 쌓기도 부족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여당은 당장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후폭풍으로 멈춰 선 국회를 재가동해야 할 책임도 떠안게 됐다. 국회 운영 주도권은 거대 야당이 쥐고 있지만 책임은 집권 여당에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24일간 단식을 이어가는 동안 여당 지도부는 “방탄쇼”라고 비난할 뿐 이 대표를 만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 대표를 핑계로 야당과의 협치를 외면했다면 이젠 적극적으로 협조를 끌어내 민생 법안 처리부터 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21일 밤 최고위에서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과 관련해 “조롱하거나 희화화하지 말자”고 뜻을 모았다. 김 대표는 3일 만인 24일 “한 줌에 불과한 개딸(이 대표 강성 지지층)이 아무리 버텨봐야 찻잔 속 태풍”이라고 적었다. 집권 여당은 ‘한 줌’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정치 원칙과 협치부터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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