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은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을 확대할 수 있는 범위를 5%로 한정했다. 한국 기업과 정부가 요청한 10%의 절반 수준이다. 중국에 공장을 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고민이 더 깊어지게 됐다.
이번에 확정된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 조항은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10년 안에 중국 등 ‘우려국가’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을 실질적으로 늘릴 경우 보조금을 전액 반환하도록 했다. ‘실질적 확장’으로 평가하는 기준은 첨단 반도체의 경우 기존의 5% 이상, 구형 반도체는 10% 이상 규모를 늘리는 것이다.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40%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우시와 다롄에서 각각 D램 반도체 40%, 낸드플래시 20%를 만드는 SK하이닉스로선 강한 투자제약 요인이 생긴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설비 업그레이드를 잠깐만 멈춰도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투자 확대 기준이 당초 ‘웨이퍼 투입량’에서 ‘생산시설 규모’로 바뀌면서 약간의 변통성이 생겼지만 현상유지 이상의 공격적 투자는 어려워졌다.
반도체 관련 미국의 대중 제재 의지는 최근 더 강경해졌다. 제재 대상인 화웨이가 중국산 첨단 중앙처리장치(CPU)와 불법 경로로 입수한 SK하이닉스 D램 반도체가 탑재된 스마트폰을 내놓은 영향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단 1센트의 지원금도 중국이 우리를 앞서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국 기업들로선 공장 한 곳에 수조 원씩 지급되는 미국의 보조금을 거부하기 어렵다. 포기하면 지원을 받는 대만, 미국 기업에 뒤처질 수 있다. 그렇다고 주요 생산기지이자, 최대 반도체 소비국인 중국에서 사업 확대를 멈추거나 축소할 수도 없다. 가드레일 안에서 최대한 효율적 투자를 통해 피해를 줄일 전략이 절실한 상황이다.
다음 달에도 한국 기업의 중국 반도체 사업에 영향을 줄 결정이 예정돼 있다. 미국, 네덜란드, 일본 업체가 만든 첨단반도체 장비 대중 수출 통제와 관련해 한국 기업에 허용된 예외 조치 연장 여부가 판가름 난다. 미국의 투자 요청에 우리 기업들은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해 많은 일자리를 현지에서 창출하고 있다. 이런 점을 지렛대 삼아 더 이상의 불이익이 없도록 미국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