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인생 2회차’를 산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동요 가사를 수십 년 만에 떠올리며 열창하고, 일상생활에서 별생각 없이 쓰던 한글의 창제 원리를 새삼 분석하며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칠 때 등 말이다. 그럴 때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유아 시절로 돌아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금 반복 학습하는 느낌을 받는다.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고전의 힘은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유효하다. 한때 아이가 매일 밤 잠들기 전 단골로 찾던 책은 다름 아닌 ‘이솝 이야기’ 시리즈와 ‘안데르센 동화’였다. 어른이 된 이 시점에 다시 접한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의 작품과 이솝 이야기는 그 나름의 교훈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곱씹어볼 수 있는 매력이 상당하다. 명작이란 수식어가 괜히 붙는 게 아니다 싶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다. 다들 알다시피 오리 무리에 섞여 너무 다른 모습에 구박과 미움을 받던 오리가 알고 보니 아름다운 백조였다는 내용이다. 이 동화가 새삼 남다르게 다가왔던 건 안데르센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든 작품이란 점이었다.
덴마크 오덴세에서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안데르센의 원래 꿈은 연극배우였다. 가난한 가정 환경 탓에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부정확한 발음 등을 이유로 배우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라틴어 학교에 들어가 문학을 배운 뒤 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꾸며 동화와 소설을 내놓지만 문장 곳곳에 있는 잘못된 문법과 오타 등으로 기성 문학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 활동 초창기 문학계에서 배척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빗대 쓴 작품이 바로 ‘미운 오리 새끼’였다.
안데르센은 ‘미운 오리 새끼’뿐 아니라 가난하고 불행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성냥팔이 소녀’, 이루지 못한 자신의 사랑을 모티브로 한 ‘인어공주’ 등 다양한 명작을 낳았다. 안데르센은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이 작품들은 수백 년간 전 세계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명작 동화로 남았다. 문법의 오류나 오타가 작품이 지닌 메시지의 힘을 꺾진 못했다.
누구나 삶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돼 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더 나은 직장을 찾아 이직했지만 새 조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기존 직원들의 텃세로 눈물 지어본 직장인도 있을 테고, 다소 ‘튄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명절에 ‘취업은 하긴 할 거니’ ‘결혼은 언제 하니’ 같은 친척들의 ‘오지랖 발언’에 상처받는 이도 있을 것이다. ‘미운 오리 새끼’를 다시 읽으며 난감한 상황이 닥쳐도 남의 시선으로 규정된 ‘미운 오리 새끼’ 단계에서 주저앉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란 듯이 털고 일어나 백조의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불혹의 나이에도 아이들을 위한 동화에서 삶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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