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임기가 24일 만료되고 후임 대법원장 임명이 늦어지면서 25일부터 대법원장이 공석이 됐다. 1993년 당시 대법원장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한 이후 30년 만에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선임인 안철상 대법관이 권한 대행을 맡았지만 권한 행사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데다, 언제 이런 사태가 해소될지 예측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애초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데는 대통령실의 부실 검증 탓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서는 10억 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을 비롯한 재산신고 누락, 자녀 상속세 탈루 가능성, 성인지 감수성 부족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했고, 법률적 쟁점에 대해선 ‘몰랐다’는 취지로 답변해 논란을 키웠다.
게다가 국회 파행으로 대법원장 인준 자체가 뒷전으로 밀린 상황이다. 여야는 당초 25일 표결에 부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민주당 내분까지 겹쳐 국회는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다음 달 10일부터는 국정감사로 본회의를 열기 어려운 만큼 다음 달 초 표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11월 이후로 미뤄질 공산이 크다. 더욱이 야당에선 이 후보자가 부적격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대법원장 공백이 장기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권한대행을 맡은 안 대법관을 포함해 2명의 대법관이 내년 1월 1일 퇴임한다.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면 후임 대법관 임명 제청을 할 수 없게 되고 상고심 재판 전체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판결에 참여하는 13명의 대법관 중 과반 의견으로 결론을 내는데, 의견이 팽팽하게 갈릴 경우 대법원장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다. 사회적 파급력이 크거나 판례 변경이 필요한 중요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실과 국회에서 문제를 풀어보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30년 만의 대법원장 공백 사태는 여야 대치로 꽉 막힌 정국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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