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거나 혹은 직접 느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정을 들어 보면 공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나와 직장, 그리고 일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프레임에서 이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고, 맺고 싶은가?” 6월부터 북클럽 ‘트레바리’를 통해 주로 30, 40대 직장인들과 함께 책을 함께 읽으며 떠올린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지금 더욱 중요한데, 코로나를 겪으며 일하는 방식이 바뀌었고, 앞으로 일과 관계 맺는 방식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고 더욱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와 관련해 생각해 봐야 할 지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직장인’으로서 연차와 직책이 올라가는데, 독립적인 ‘직업인’으로서 나의 가치는 혹시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과거에는 소속된 직장을 벗어나면 나의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시나리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정년까지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가능하다. 하지만 국내 임금 근로자의 퇴직 사유에서 정년퇴직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2022년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가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국내 임금 근로자들은 평균 49세에 퇴직하고 절반 가까이는 비자발적인 조기 퇴직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환경 안에서 직장 다니는 동안 열심히 저축과 투자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거에는 직장인으로서 일과의 관계를 생각했다면 이제는 직장 소속 여부와는 별도로 ‘직업인’으로서 스스로를 바라보고, 나의 가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다.
‘전설의 수문장’을 쓴 작가이자 40년 넘는 경력의 호텔 도어맨 권문현 씨는 은퇴한 해에 다시 다른 특급호텔에서 일자리를 제안받았다. 이는 그가 어딘가에 소속돼 있는 ‘직장인(office worker)’이 아닌 고객에게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독립적인 ‘직업인(professional)’이었기에 가능했다. 직업인은 직장을 떠나더라도 다양한 기회를 제안받을 가능성이 ‘직장인’에 비해 훨씬 높기 마련이다.
재택과 하이브리드 근무가 확산되면서 이제 근무 시간을 조건으로 고용 계약을 맺는 정규직 형태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 대신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프로젝트 수행을 하는 형태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즉 ‘일자리’보다 일할 수 있는 ‘프로젝트 기회’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를 살게 되는 것이다.
직업인은 주도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자기만의 전문성, 즉 자기 직업의 미래 가치를 높이는 사람들이다. 직업인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직장에서 ‘시켜주는’ 교육이나 출장 이외에도 자기만의 전문성 개발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 돈을 투자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만들어가는 자기만의 직업 가치는 결국 훌륭한 주식과 마찬가지로 이후 나에게 더 큰 경제적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업이 연구개발을 하고, 사람들이 주식에 투자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스스로의 직업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투자에 인색했다면 다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직업은 직장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기업은 ‘직장인’들의 과거 기여 가치에 대해 연봉이나 인센티브와 같은 제도를 통해 ‘보상’하고 미래 기여 가치에 ‘투자’한다. 과거 기여에 ‘투자’하는 곳은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몇 년을 회사를 위해 고생했는데…”라는 말은 회사가 내게 밀린 보상이 있거나 관련 법을 어겼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일의 미래센터에서 근무하는 데즈먼드 디커슨은 2020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 회사의 차기 최고운영자는 원격으로 일하면서 회사에 6개월간 재직할 것이며, 심지어 회사 이메일 주소도 갖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최고운영자를 고용한 결정은 당신 회사가 한 최고의 결정이 될 것”이라고.
지금 시대에 일과 나와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서 나를 바라보고, 나의 미래 가치를 만들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연구개발을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다. 장기 투자를 통한 복리의 마법은 주식뿐 아니라 직업 만들기에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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