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키 옛집’은 미국 작곡가 스티븐 포스터가 19세기 중반에 작곡한,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음악가 박태원이 번안하여 소개한 후 같은 작곡가의 ‘오, 수재너’ ‘스와니강’ ‘금발의 제니’와 함께 대중적인 곡이 되었다.
그런데 ‘켄터키 옛집’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인종적 편견이 배어 있는 곡이기도 하다. 흑인을 비하하여 부르는 다키(darkie)라는 말 때문이다. 인종적 편견은 박태원의 번안곡 서두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켄터키 옛집에 햇빛 비치어 여름날 검둥이 시절.’ 검둥이라는 우리말은 다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차별적 언어다. 검은 개를 지칭하는 말이 흑인을 지칭하는 말로 전용된 탓이다.
포스터의 노래는 본디 인종차별적인 노래가 아니었다. 그는 노예 생활을 하는 흑인들에 대해 동정적이었다. 그래서 주인집으로부터 도망쳐 자유로운 몸이 되어 노예제 폐지 운동을 했던 흑인 작가 프레더릭 더글러스마저 이 노래를 알리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다키라는 말이 노랫말에 들어간 것을 보면 포스터는 시대의 인종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의 노래에 들어간 건 그 말만이 아니었다. ‘오, 수재너’에는 니거(nigger)라는 말이 들어갔다. 니거는 흑인 시인 랭스턴 휴스의 말대로 “흑인들에게는 황소에게 붉은 천을 들이미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미국인들은 ‘켄터키 옛집’에서 흑인들을 자극하는 다키라는 말을 ‘사람들(people)’로 대체했다. 켄터키주의 노래 ‘켄터키 옛집’에는 이제 다키라는 말이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여전히 검둥이라는 말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박태원이 번안한 대로 아직도 첫 소절을 “켄터키 옛집에 햇빛 비치어 여름날 검둥이 시절”이라고 부르면서 흑인들의 상처를 건드리며 자기도 모르게 인종주의에 가세한다. 치유는 때로 언어를 바로잡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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