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지난해 납부된 상속세는 71억 파운드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영국인들이 보유한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커지면서 상속세 부과 대상자가 늘어난 결과였다. “세금 당국이 중산층을 착취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큰 부자들만 겨냥한 것으로 여겨졌던 상속세 부담의 범위가 중산층으로 점차 넓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는 상속세가 ‘영국인이 가장 혐오하는 세금’ 1위에 올랐다.
▷영국 정부가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더타임스가 보도했다. 리시 수낵 정부가 다음 달 보수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지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이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치권이 ‘부자 감세’ 반대 여론을 의식해온 것과 방향은 다르지만 또 다른 정치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영국의 상속세 부과 기준은 32만5000파운드(약 5억3500만 원). 이를 넘는 유산에 적용되는 40%의 단일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일본, 한국, 프랑스 다음으로 높다.
▷내각 인사들은 과도한 상속세율의 문제점을 공개 직격하고 있다. 최근 부친상을 치르고 상속세 고지서를 받아든 그랜트 섑스 국방장관은 “사람들이 왜 이걸 징벌적으로 여기는지 이해하게 됐다”며 “매우 불공정하다”고 했다. “평생 열심히 일한 이들이 자녀에게 유산을 남겨주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이라는 레이철 매클레인 주택장관 발언도 나왔다. 보수당 소속 의원 50여 명은 “자본의 재할당을 막아 경제를 훼손한다”, “이미 각종 세금을 낸 자산에 이중과세하는 것”이라는 등의 비판과 함께 폐지 논의에 힘을 실었다.
▷유럽에서는 2000년대 들어 이미 스웨덴과 체코,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등이 상속세를 폐지했다. 스웨덴의 경우 70%에 이르는 상속세율의 부담으로 대표 기업인 이케아가 모국을 떠나고,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의 전신 기업이 상속 과정에서 결국 경영권까지 해외에 넘긴 이후의 만시지탄이었다. 상속세를 유지하고 있는 OECD 국가 중 상속세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인데, 가업 상속 시 각종 면제와 혜택을 따져보면 실효세율은 11% 정도로 내려간다. 미국은 1200만 달러(약 160억 원) 선까지는 상속세를 내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사망률은 2026∼2030년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이 피땀 흘려 축적해 놓은 부가 자녀 세대로 흘러내리는 과정에서 상속세가 가져올 경제적, 사회적 논란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반발을 감수하고 상속 세제 개편에 나서고 있는 나라들은 그 득보다 실이 더 커지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속세율이 50%,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합치면 최대 60%에 이르는 한국이 마냥 손놓고 있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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