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기업부채마저 위험 수위에 다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기업부채는 2706조 원으로 역대 최대치로 불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24.1%로, 무더기 도산이 이어졌던 1998년 IMF 외환위기(108.6%)는 물론이고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99.6%) 때보다 높아졌다.
이는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빚으로 연명하는 기업이 급증한 데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환율, 고유가 등의 여파로 시설·운전자금 수요가 크게 늘어난 영향이 크다. 특히 세계 주요국들은 긴축 기조 속에 GDP 대비 기업부채를 줄였지만 한국만 예외여서 우려를 더한다. 천문학적 가계 빚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된 데 이어 기업부채마저 또 다른 뇌관으로 떠오른 것이다.
문제는 고금리와 저성장이 ‘뉴노멀’로 굳어지면서 기업부채의 부실 징후 또한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작년 말 기준 3900개를 웃돌았다. 전체 기업(외부감사 대상 비금융 기업)의 15%를 차지하는 것으로, 5년 만에 가장 높은 비중이다. 이 중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낸 지 7년이 넘은 만성 한계기업은 900여 곳이며, 이들이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만 50조 원이 넘는다. 자칫하면 채무불이행이나 파산 위기에 내몰릴 ‘악성 좀비기업’들이 떠안은 빚이 이만큼 많다는 뜻이다.
최근 미국이 긴축 고삐를 죄고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다시 넘어서는 등 기업 경영 환경은 갈수록 험난해지고 있다. 한계기업의 부실 폭탄이 잇따라 터지기 전에 서둘러 안전판을 마련해야 한다. 도미노 파산이 현실화하면 실물경기와 금융 시스템도 치명상을 입게 된다.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우량기업과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을 구분해 과감히 구조조정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당장의 충격을 피하기 위해 ‘좀비기업’의 수명을 계속 연장한다면 부실이 눈덩이처럼 커질 뿐만 아니라 우량기업이나 혁신 생태계로 흘러갈 자금의 선순환도 막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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