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시작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우유를 타서 환자들에게 나눠 줬다. 그 뒤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조용히 소록도를 떠났다. 20대 청춘에 처음 한국에 왔을 때처럼 70대의 노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손엔 여행가방 하나씩만 들려 있었다. 9월 29일 마가렛은 그 가방마저 내려놓은 채 고향 오스트리아에서 영원한 길을 떠났다. 향년 88세. 세상에 유일하게 남긴 시신마저 의대에 기증했다.
▷마가렛은 평생의 벗 마리안느(마리아네 스퇴거·89)와 함께 40여 년간 한센인을 돌봤다. 흔히 수녀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수녀가 아니라 평신도 재속회 소속이었다. 간호사를 구하는 동양의 한 가난한 나라의 요청에 응해 1959년 12월 한국에 왔다. 경북 왜관, 전북 전주 등의 한센인 정착촌에서 봉사하다 1961년 순명의 삶을 살기 위해 수녀원에 들어갔다. 건강이 나빠져 1964년 수녀원을 나왔는데 희한하게도 몸이 좋아졌다. 달리 쓰임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1966년 10월 전남 고흥군 소록도로 들어갔다.
▷폴란드계 오스트리아인인 마가렛의 본명은 마르가리타 피사레크. 가족들은 마르기트라고 불렀다. 하지만 소록도 사람들은 처음에 잘못 알아듣고 ‘마귀’라고 했다. 편하게 영어식으로 마가렛으로 부르라 했다. 백수선이란 한국 이름도 있다.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때쯤부턴 사람들이 한 살 많은 마리안느를 ‘큰 할매’, 마가렛을 ‘작은 할매’라 했다. 1970년대 초까진 또 다른 간호사 마리아 디트리히 씨까지 소록도의 ‘세마’로 불렸다. 소록도에는 이들의 공적을 기리는 ‘세마비’가 있다.
▷과거 ‘나병’ ‘문둥병’이라 불리던 한센병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의료진조차 방역복과 마스크, 장갑으로 완전 무장한 채 환자와 거리를 두고 진료했다. 하지만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태연하게 환자들의 짓무른 손발가락을 소독하고 피고름을 직접 짜냈다. 환자의 상처에 얼굴을 바싹 갖다대고 치료하다 보니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늘 타인의 눈빛에서 전염의 공포를 보았던 한센인들은 이들의 진심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
▷유럽 내륙에서 나고 자란 마가렛은 소록도에 와서 처음으로 바다를 봤다고 했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설산을 보면서도 소록도의 푸른 바다를 그리워했다. 치매를 앓는 중에도 소록도의 추억은 또렷했다. ‘죽어서도 소록도에 묻히고 싶다’던 그가 한국을 떠난 건 나이가 들어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이유였다. 온전히 베푸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큰 사랑과 신뢰를 받아서 하늘만큼 감사합니다”라는 편지를 남겼다. 이젠 우리가 하늘만큼의 감사와 존경을 돌려 줄 차례다. 고인의 영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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