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 동안 이어진 추석 연휴 기간 다락같이 오른 물가에 혀를 내두른 이들이 적지 않다. 급등한 과일·채소값에 차례상을 간소화하거나 생략한 가정이 늘었고, 성묘·나들이길엔 가파르게 뛴 외식비와 기름값에 지갑 열기를 주저하는 사람이 많았다. 서울의 외식메뉴 평균 가격(한국소비자원 참가격 기준)은 최근 1만 원을 돌파해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사먹을 수 있는 메뉴가 짜장면, 김밥, 칼국수 등 4개뿐이라고 한다.
연휴가 끝나면 그동안 억눌렸던 식품 가격, 교통요금 등이 줄줄이 인상돼 생활물가 부담은 더 커지게 됐다. 당장 그제부터 우유업체들이 원유(原乳) 가격 인상에 따라 흰 유유를 비롯한 유제품 가격을 3∼13% 올렸다. 빵·과자·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7일부터 수도권 지하철 기본요금이 150원 올라 1400원이 되고, 부산 시내버스 요금도 6일부터 350원 인상된다.
더 큰 걱정거리는 배럴당 100달러대를 위협하는 국제유가다. 올 초 70달러 안팎까지 떨어졌던 국제유가는 최근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감산 연장을 밝히면서 90달러를 넘어 고공비행 중이다. 미 월가에서는 유가가 연내 120달러까지 돌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에 이은 2차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미 국내 휘발유값은 12주 연속 올라 L당 평균 1800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유가 상승은 치명적이다. 고유가는 물가 전반의 상승으로 직결돼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민간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올해 1%대 성장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맞물린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수 있다. 서민 실생활에 영향을 주는 생활물가 안정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고유가 공포 속에 미국이 긴축 고삐를 죄고 환율마저 연고점을 경신하면서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파도가 1년 만에 밀려들고 있지만 이에 대비한 방파제는 여전히 부실하다. 반복된 유류세 인하와 전기요금 동결로 에너지 과소비 구조는 해소되지 않았고, 천문학적 가계 빚과 경기 악화 우려 탓에 물가 상승 압력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도 쉽지 않다. 이제라도 경기 회복에 대한 섣부른 기대를 접고 고유가·고물가를 상수(常數)로 두고 위기관리 해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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