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이 나물이나 김칫거리를 다듬으며 반찬을 만드는 모습은 소도시 백반집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편 “기본 주문이 2인분이라 포기하고 나왔어요.” “일부러 점심시간을 피해 갔는데도 혼자라고 하니까 눈치를 엄청 주더라고요.” 인터넷에선 백반집을 혼자서 이용할 수 없어 불편함을 토로하는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행하는 이들에게 음식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지만 여행자가 지역에서 맛보고 싶어 하는 음식이 한 그릇에 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2인분 이상의 메인 요리와 반찬이 차려지거나 최소 2인분의 양을 상정한 백반 형태의 상차림이 나온다. 한 그릇 음식인 비빔밥을 주문해도 곁들이는 국과 반찬이 나오는 걸 보면 백반이 하나의 메뉴명을 넘어 한식의 틀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문화에선 반찬 수가 손님을 대하는 접객의 마음을 대변한다. ‘차린 게 없다’는 겸양의 표현이나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감탄을 보더라도 그렇다. 문화권마다 음식을 통한 환대의 방식이 있는데 전통 한식의 경우 풍성한 상차림이 환대를 담은 대표적인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문화의 상차림에서 엿볼 수 있는 환대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줄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것을 내어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과정에서 투입되는 노동력 혹은 수고로움은 크게 상관치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환대의 상차림이 서비스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저부가가치의 성격을 띠게 된다는 점이다. ‘2인분 이상’이라는 마지노선은 투입에 비해 돌아오는 경제적 대가가 크지 않다는 데서 비롯된 설정이다. 혼자 여행을 즐기는 ‘혼행족’에게 2인분 이상은 한식을 경험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30세대의 경우 혼행 자체에 대한 로망이 있거나 동반자와의 일정 조정에 어려움을 느껴 주로 혼행을 떠난다고 한다. 이들은 일정 조정과 편의시설 이용에서는 높은 만족도를 보인 반면 혼자 식사하는 상황에서 많은 불편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혼행족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서 백반 형태의 한식 상차림이 단기간에 변화를 맞이하긴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가구 및 생활 형태가 변하고 있는 만큼 음식을 통해 상대를 대하는 환대의 형식도 조금씩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껏 해왔던 방식대로 대접하면 족하다는 인식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태에 유연하게 적응하기 어렵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상차림만이 한식의 환대를 나타내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 수 있다. 상대가 어떤 환대를 받고자 하는지를 헤아리는 마음 또한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할 요소다.
한식과 기본 구성이 다르긴 하지만 1인분 메뉴 안에 접객의 마음을 담는 외국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스페인의 타파스 바에서는 식당에 방문하는 사람 수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메뉴를 조금씩 주문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작은 메뉴를 몇 개 골라 먹은 후 쉽게 자리를 뜰 수 있는 구조는 손님 입장에서 매우 편리하다. 혼자서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여러 사람이 함께하더라도 상대 눈치를 보지 않고 메뉴 선정이 가능하다.
가게 입장에서의 장점도 있다. 회전율이 빨라 제한된 시간 안에 많은 고객을 맞을 수 있고 고객이 선호하는 메뉴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쉽다. 재료를 준비하고 메뉴를 구성하는 데 좋고 낭비하는 식재료를 줄일 수 있다. 저렴한 가격에 적은 양의 음식을 제공하면 고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여러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으므로 매출에도 긍정적이다.
한국관광공사는 혼행족을 위해 지역 식당에 샘플러 메뉴나 식당 간 협의하에 콤보 메뉴 등 1인 메뉴를 늘릴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혼밥이 가능한 식당 목록을 정리해 공개하기도 한다. 환대가 그저 친절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공감 능력을 발휘해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라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숫자 이상으로 읽어내야 한다. 한식의 환대가 1인분의 딜레마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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