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이 3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공화당 소속) 해임 결의안을 찬성 216표, 반대 210표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매카시 의장은 재임 269일 만에 물러났고, 법안심사·처리 등 의회 기능이 정지됐다. 대통령·부통령에 이어 권력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이 해임된 것은 미 의회 234년 역사상 처음이다. 표결에는 해임안을 제출한 맷 게이츠 의원 등 공화당 강경파 8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당론으로 찬성을 결정한 민주당 의원 전원이 가세했다.
이번 하원의장 해임은 공화당 내 강경파의 반란에 따른 야당 내분 사태에서 비롯됐지만 그 근저에는 비타협적 정치 양극화가 있다. 공화당 강경파는 매카시 의장이 연방정부 셧다운을 막기 위해 45일짜리 임시예산안을 처리하자 그에 반발해 해임을 주도했다. 일각에선 민주당 일부가 매카시 의장을 도울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를 추진한 매카시 의장과 날카롭게 대립해 온 민주당에서 당론 이탈 의원은 없었다. 여야의 가파른 대결 속에 야당 강경파가 여당 측과 손잡고 의장을 몰아내는 초유의 사태를 빚은 것이다.
의장 공석 사태는 장기화할 수 있다. 당장 새 의장을 선출해야 하지만 공화당 내분 수습부터 쉽지 않다. 매카시 의장도 올해 1월 자당 강경파가 잇따라 반대표를 던지면서 15번째 투표에서야 선출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의원 1명만 발의해도 의장 해임 표결을 가능케 하는 규정도 만들어졌다. 어떤 타협도 거부하는 소수 강경파가 의회를 마비시킬 수 있는 정치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태 장기화는 국정운영의 책임을 진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에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예산안과 법안 처리가 기약 없이 밀리면 일단 늦춰 놓은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다. 특히 여야 예산안 대치의 핵심은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예산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공화당 강경파는 전액 삭감을 주장하고 있어 자칫 동맹과 우방의 신뢰마저 잃을 수 있다.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던 초당적 협력은 이제 옛말이 됐다. 대화와 타협은커녕 절제와 관용도 찾아보기 힘들다. 거슬러 올라가면 전임 행정부 시절 최고조에 달했던 분열과 갈등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내년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더 큰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 있다. 국제사회의 리더 국가인 미국의 정치 실종은 전 세계에도 위기의 경보음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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