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기(10∼12월)가 시작됐지만 이번 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2분기(4∼6월) 전기요금 인상 때를 되돌아보면 최종 결정까진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앞서 2분기 전기요금은 2분기가 한 달 반이나 지나 결정됐다. 전기요금은 한국전력이 조정안을 만들어 산업통상자원부에 신청하면 산업부 산하의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된다. 이 과정에서 산업부는 물가안정법에 따라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한다.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은 4일 열린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4분기에 kWh(킬로와트시)당 25.9원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료비 연동제를 2021년 시행하면서 정부가 약속한 대로 이행한다면 올해 45.3원을 인상했어야 하는데 그것에 못 미쳤다”며 “적정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 들어 전기요금은 19.4원(전력량 요금 기준) 인상됐다. 실제로 요금이 25.9원 오르면 4인 가구 기준으로 한 달 전기요금은 8000원가량 오른다.
한전 사장이 전기요금을 꼭 올려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 데는 한전의 ‘빚 돌려막기’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원가보다 싼 전기요금 탓에 2021년부터 올 상반기(1∼6월)까지 쌓인 한전의 적자는 47조 원에 달한다. 이로 인해 올 상반기 차입금은 131조4000억 원까지 불어났고, 하루에 이자로만 약 118억 원을 내고 있다. 1년이면 4조3070억 원이다. 올해도 수조 원대의 영업손실이 날 한전은 내년이면 운영자금을 충당하기 위한 추가 한전채 발행마저 막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건 결국 제때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해서다. 전 정부 때인 2021년 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비가 급등했지만 요금은 한 차례 3원 인상되는 데 그쳤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고공행진하던 지난해 1분기(1∼3월)에도 요금을 동결하고 인상을 뒤로 미뤘다. 에너지 가격 변동분을 전기 생산 원가에 반영하도록 한 연료비 연동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네 차례 요금 인상이 이뤄졌지만 전기료가 원가에 못 미쳐 전기를 팔수록 손해인 구조는 여전하다.
김 사장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은 독립 기구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그는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금리도 시장 상황 등을 감안해 금통위에서 결정한다. 설령 인상되더라도 어느 누구도 정부 탓으로 비판하지 않고 받아들인다”고 했다. 전기요금도 독립된 기관에서 연료비 원가에 따라 결정하면 정부는 부담을 덜 수 있고 국민도 납득하기 쉽다는 취지다.
전 정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한 인사는 “전기요금은 사실상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산업부와 기재부가 협의해 결정한다고 해도 서민 경제와 밀접한 전기요금을 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결정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는 보고를 받은 대통령이 참모들과 논의해 전기요금을 결정했다고 회고했다. 전기료가 ‘정치요금’이 된 데는 이 같은 의사결정 구조가 있다. 공기업 한전의 부채는 결국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한전 설립 이후 첫 정치인 출신 사장이 정치와의 분리를 강조하는 건 아이러니다. 그러나 전기요금을 결정할 독립 기구 도입이 시급한 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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