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업고 가을 오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8〉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6일 23시 45분


타는 가을 산, 백운 계곡 가는 여울의 찬 목소리
야트막한 중턱에 앉아 소 이루다

추분 벗듯 고요한 소에 낙엽 한 장 떠
지금, 파르르르 물 어깨 떨린다

물속으로 떨어진 하늘 한 귀가
붉은 잎을 구름 위로 띄운다

마음이 삭아 바람 더는 산 오르지 못한다
하루가 너무 높다 맑은 숨 고여

저 물, 오래전에 승천하고 싶었으나

아직 세상에 경사가 남아 백운산
흰 이마를 짚고 파르르르 떨림

―신용목(1974∼)



이 시를 쓴 신용목은 가을이나 바람처럼 쓸쓸한 것들을 잘 다루는 시인이다. 사실 ‘다룬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시라는 붓끝으로 그려낸다고 말해야 옳다. 눈앞의 사물을 정밀히 그리는 것이 극사실주의이고, 이런 경향이 그림에서도 지나간 사조가 된 것처럼 시에서도 보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본 것보다 더 깊이 느끼게 해줘야 한다. 이것이 시가 쉽지 않은 이유다.

첫 구절이 참 묘하다. 가을 산은 붉고 여울은 하얗다. 가을 산은 타고 있으니 상승의 에너지이고 뜨거움이다. 이에 반해 여울은 아래로 내려가는 하강의 에너지요, 차갑다. 가을 산이 붉은 것은 눈에 보이고, 여울이 흐르는 것은 소리로 들린다. 오르려는 마음과 내려가려는 마음, 뜨거운 마음과 차가운 마음, 붉은 것과 하얀 것이 만나 팽팽히 맞설 때 거기에 연못이 생겨났다.

가볍게 오르지 못했고, 시원하니 내려가지도 못했으니 연못은 실패한 것일까. 아니, 시인은 오도 가도 못하는 연못을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낸다. 지상에 머물며 모든 계절을 경험하고 세월을 쌓아가는 연못은 낯설지도 않다. 그건 꼭 우리 같다.

#백운산#가을#신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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