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임관한 육군 최우섭 소위(23)는 ‘그날’의 감동이 생생하다. 지난달 26일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10월 1일)을 앞두고 서울 도심에서 시가행진이 진행됐다. 10년 만의 군 시가행진이었다. 최 소위도 행진에 참여했다. 그는 “행진 시작부터 끝까지 시민들이 박수와 환호를 계속 보내주셨다. 응원이 쏟아졌다”며 “우리 군이 지지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힘이 많이 났다. 임관 이후 처음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군인 중엔 시가행진 이후 어깨를 펴게 됐다는 이들이 많다. 일면식도 없는 시민들의 박수와 환호, “멋져요” 한마디에 힘을 얻었다고 한다. A 중령은 “군 전반에 대한 인터넷상의 냉소적인 여론 때문에 군복을 입고 다닐 때 위축될 때가 많았다”며 “그날 행진 경로마다 상인과 시민들이 나와 손을 흔들고 ‘멋지다’면서 박수 쳐주는데 군인이 된 뒤 처음으로 환영받고 예우받는 기분이 들어 눈물이 날 뻔했다”고 했다.
시가행진 당일 시민들이 보여준 ‘제복에 대한 존중’에 감동한 군인이 많은 건 반대로 그간 존중받은 경험을 가진 군인이 그만큼 적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2016년 중고교생 및 성인 12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 조사에서 44개 직업 중 군인의 직업존경도 순위는 17위였다. 시기는 다르지만 2021년 미국의 비슷한 조사에서 군인이 28개 직업 중 4위에 오른 것과 확연히 비교된다.
2016년 이후 7년이 지났지만 군인은 여전히 존중의 사각지대에 있는 듯하다. 군인을 비하하는 ‘군바리’는 일상적으로 쓰인다. 젠더 갈등이 격화되면서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20대 남성들을 향해 “병영캠프에 놀러 간 것”이라며 조롱하는 말까지 나온다.
미국은 현역 군인에게 시민들이 “thank you for your service(당신의 복무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이 일상이다. 미국 항공사는 군인에게 우선 탑승 서비스를 제공한다. 좌석을 업그레이드해주거나 희생에 감사하다는 기내 방송도 한다. 유명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일도 자주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사례가 희소하다 보니 뉴스거리가 될 정도다. 최근 서울 노원구의 한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한 육군 병장에게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은 음료를 건네 화제가 됐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미국 영화를 볼 때면 제복 입은 사람들이 어딜 가나 존경과 응원을 받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이 아르바이트생에게 큰 표창이라도 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 미국에서 1년간 교육받았던 B 중령은 “타국 군복을 입고 있는 내게도 미국인들은 항상 감사하다고 인사했다”며 “최근 H자동차 서비스센터에서 차 정비를 받았는데 차에 부착된 부대 출입증을 보고 직원이 ‘제복 입고 일하시는 분 같아 특별히 더 신경 썼다. 나라를 위해 헌신해줘 감사하다’고 하더라. 군 생활을 20년 했지만 국내에선 모르는 분에게 이렇게 예우받는 건 처음이었다”고 했다.
보훈부는 이달부터 다음 달까지 ‘제복근무자 감사 운동’을 진행한다. 공익 광고를 송출하고 이들의 근무지에 푸드 트럭을 보내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실시된다. 제복 존중 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것이 취지다.
박 장관은 “제복은 단순한 근무복이 아니다. 제복에는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희생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며 “우리가 평소 제복 근무자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당장 군은 초급간부 확보에 비상이 걸려 있다. 학사장교는 2018년 경쟁률이 4 대 1이었지만 지난해 2.6 대 1로 떨어졌다. 초급간부를 확보하려면 보수 현실화 등 처우 개선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여기에 군인 존중 문화 확산을 위한 노력이 더해지지 않으면 ‘워라밸’과 더 큰 돈을 벌 기회 등을 포기하고 군인의 길을 택하는 청춘은 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평시 국민의 군인에 대한 존중은 시가행진 사례에서 보듯 군인의 자부심을 끌어올린다. 이는 곧 전시 군인의 전투력 향상과 국민을 위한 희생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았듯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도 북한에 언제 어떤 식으로 공격받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김영곤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국민의 안보 불감증이 해소돼야 군인에 대한 예우도 강화될 것”이라며 “우리 군이 어떻게 나라를 지키고 있는지를 국민에게 보여줄 크고 작은 행사를 여는 것도 군인 존중 문화 확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시가행진을 계기로 자부심을 얻은 새내기 장교 최 소위의 바람은 소박했다.
“친한 친구들도 저에게 ‘군인 왜 했냐’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런 질문에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군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많지만 국군은 전후방 각지에서 평화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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