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증 정신질환자 50만 명 가운데 코로나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증상이 악화되면서 강제 입원한 사례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커 강제 입원한 사례는 3만9446건으로 2020년보다 12% 증가했다. 환자가 위해를 가하는 응급 상황에서는 지방자치단체나 경찰이 개입해 본인의 동의 없이 입원시킬 수 있지만 대개는 환자의 가족에게 까다로운 입원과 치료 부담을 떠넘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정신건강의 날을 앞두고 동아일보 취재팀이 만난 정신질환자 가족들은 환자가 극도의 흥분 증세를 보이거나 흉기를 휘두르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해 강력 범죄를 저지를까 조마조마하다고 호소했다. 경찰에 신고해도 보호의무자, 즉 가족이 있으면 병원비 부담이나 민원 혹은 소송 우려 때문에 적극적인 대처를 꺼린다는 것이다. 2019년부터 올 8월까지 강제 입원 18만7570건 중 정부가 개입한 비율은 32%밖에 안 되고 나머지 68%는 가족이 입원시킨 사례였다.
현실과 동떨어진 보호의무자 요건도 치료를 지연시키고 있다. 현행법상 보호의무자는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다. 부모가 연락이 안 돼 환자의 형제자매가 강제 입원을 신청해도 자격 미달이나 서류 미비 등을 이유로 거절당하는 사례가 많다. 2019년 경남 진주에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2명의 사상자를 낸 안인득도 범행 1개월 전 형이 강제 입원을 시키려다 거부당했다. 안인득의 보호의무자인 노모는 당시 요양병원에 있었다.
선진국 중 정신질환자와 관련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유엔은 보호의무자 제도의 폐지를 권고한다. 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는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국가 기관의 심사를 거쳐 강제 입원과 퇴원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가족 구조도 핵가족이나 1인 가구 위주로 변화하고 있어 환자 돌봄을 가족에게만 맡기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환자와 사회 모두를 위해 국가의 정신질환자 치료와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봐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