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분유 제조기나 요양보호사처럼 가까운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도와주는 제품과 서비스를 ‘부양(Caregiving) 제품’이라고 한다. 이런 부양 제품은 편리성이라는 혜택을 주지만 동시에 ‘감정 비용’을 지불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일례로 식기세척기가 처음 시장에 출시됐을 때 판매에 한동안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비싼 가격이 아닌 주부들의 심리적 우려였다. 주부들은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면 주변에서 자신을 ‘게으른 주부’로 볼 것이라고 걱정했다.
아기를 흔들어 재워주는 스마트 침대 ‘스누(SNOO)’도 마찬가지다. 스누는 부모가 아기를 안고 흔들며 재워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고안됐다. 부모가 살살 흔들며 달래는 것처럼 스마트 침대가 자동으로 흔들리며 아기가 자연스럽게 잠들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런 혁신 제품이 뉴욕타임스와 같은 여러 미디어에 소개되자 많은 독자가 이를 ‘게으른 부모들을 위한 제품’이라고 폄하했다.
이처럼 부양 제품은 부양하는 대상에게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심리적 불편함을 주며 일종의 감정 비용을 부과하지만, 기존에 출시된 부양 제품의 대부분은 기능성에 초점을 둔 마케팅을 해왔다. 감정 비용에 초점을 맞춰 그것을 덜어주는 마케팅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최근 학계에서는 부양 제품을 사용할 때 소비자들이 왜, 어떤 경우에 불편한 감정 비용을 지불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 텍사스 A&M대, 노스웨스턴대, 하버드대, 워싱턴대 공동 연구진은 부양 제품 사용이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특히 ‘부양 제품 사용을 통해 수고가 줄어든다는 이득’과 ‘부양 제품을 사용하며 충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미안함으로 인한 심리적 비용’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중점적으로 알아봤다. 연구팀은 501명이 참여한 실험에서 임의적인 실험 조건 두 가지를 설정했다. 수고를 덜어주는 부양 제품 또는 서비스를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두 조건 중 하나에 참가자들을 할당하고 실험 마지막 단계에서 각각의 조건에 따라 자신이 얼마나 더 좋은 부양자였는지를 스스로 평가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참가자들이 부양 제품 사용을 통해 돌보는 노력이 줄어들수록 스스로를 좋은 부양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부양 제품을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감정 비용을 확인한 셈이다.
부양 제품 사용자들이 스스로가 좋은 부양자라고 느낄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조건을 일부러 선택할 때가 있다는 점도 발견했다. 예컨대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카드를 드릴 때 타자를 쳐서 출력하기보다는 손으로 직접 쓰는 방식을 선택한다거나 배우자를 위해 요리할 때 같은 도넛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계가 아닌 손으로 반죽하는 방식을 택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타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때 직접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것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는 것과 수고를 덜어주는 부양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때 불편을 느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는 다양한 부양 제품 및 서비스가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비자가 부양 대상과 가까울수록, 물리적 도움만이 아닌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것일수록 부양 제품을 통해 수고를 더는 것에 불편을 크게 느낀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연구는 부양과 관련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이런 제품을 마케팅할 때는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감성이나 정서를 자극하는 문구를 쓰면 좋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스마트 침대 스누의 광고는 ‘스누를 사용하세요. 잠을 재우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보다는 ‘당신은 아기에게 포옹과 키스를, 스누는 좋은 잠을 줍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 글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77호(2023년 9월 2일자)에 실린 ‘가족 부양용 제품, 효율성 너머를 봐야’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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