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의 도널드 트럼프는 영화 ‘터미네이터’ 2편의 사이보그 암살자 같을 것이다.” 대니얼 드레즈너 터프츠대 교수가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내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2기 행정부 탄생 가능성에 전 세계가 불안해하고 있다며 전한 유럽 외교관의 말이다. 1편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정교한 킬러로봇이 등장한 터미네이터 2편처럼 ‘트럼프 2.0’은 한층 독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보수우파 진영의 트럼프 2기 준비는 빠르고 꼼꼼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장관이나 고위직으로 일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와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 2025’ 같은 그룹들이 벌써 차기 공화당 정부의 비전과 어젠다, 정부 운영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제2의 로널드 레이건 보수혁명’을 외치며 우파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미국 사회의 전면 개조를 다짐한다.
특히 이들은 좌파 기득권층의 소굴이 됐다는 관료조직의 ‘딥스테이트(Deep State)’를 무너뜨리고 보수의 전사들로 채워 넣기 위해 인력 발굴과 훈련, 검증이라는 야심 찬 프로그램까지 출범시켰다. 그러면서 “대통령 취임 첫날 ‘행정 국가’에 대한 철거용 쇳덩이의 일격을 보게 될 것”이라고 외친다. 이를 위해 트럼프가 임기 말 자신의 국정기조에 반발하는 공무원들을 솎아내 언제든 해고할 수 있도록 했던 행정명령 ‘스케줄 F’를 되살리겠다고 한다.
전례 없는 행정부 개조 계획은 트럼프 1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여준다. 트럼프 자신조차 긴가민가했던 대통령 당선, 요직 인사들의 낙마와 이탈, 트럼프의 변덕에 맞선 안팎의 저항…. 그런 트럼프 1기와는 차원이 다른 정부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차기 행정부엔 앤서니 파우치 박사 같은 ‘영웅’도,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같은 ‘어른’도 없을 것이라고 트럼프 충성파들은 공공연히 말한다.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급진적 공무원 숙청 구상이 뜻대로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오히려 트럼프 1기 때보다 더 큰 혼란과 마비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아무리 충성심이 높아도 예측불허 인사권자의 독단을 버텨낼 인물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보수혁명은 스스로를 잡아먹는 괴물이 될 것”이란 전문가의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만은 않는다.
트럼프 2기가 불러올 충격파는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가, 특히 미국의 동맹과 우방이 트럼프의 재등장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당장 ‘프로젝트 2025’의 정책 제언서는 “비용 분담을 국방전략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며 재래식 방위에 대한 동맹국의 더 큰 책임을 요구한다. 한국에도 “북한에 대한 재래식 방어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은 핵 억제력 확충에 집중하고 나머지 지역 방위 책임은 동맹국들에 지우겠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은 아직 1년 넘게 남아 있다. 그 결과는 온전히 미국인의 선택에 맡겨져 있고, 국제사회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도리 없이 감당해야 할 미래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예산을 둘러싸고 초유의 하원의장 해임 사태까지 낳은 미국 정치의 분열과 갈등은 다가올 ‘트럼프 쓰나미’의 예고편일지 모른다.
더욱이 트럼프의 복귀를 바라는 독재자들의 준동, 특히 북한의 도발은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제 앞가림에 바쁜 조 바이든 행정부에 동맹의 역할을 크게 기대하기 힘들 수도 있다. 앞으로 1년, 한국엔 군사적으로 더욱 자강(自强)에 힘쓰면서 외교적으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지혜롭게 관리해야 하는 전략적 고투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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