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의 방만한 경영 행태와 임직원들의 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난 채희봉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지난해 4월 영국 출장 때 1박에 260만 원 하는 호텔 스위트룸에 사흘간 투숙했다고 한다. 공기업 사장에 준하는 차관급 공무원의 숙박비 상한이 1박에 48만 원인데 5배 넘게 쓴 것이다.
더군다나 지난해는 가스공사의 미수금(손실액)이 8조6000억 원, 부채비율이 500%까지 치솟으며 재무 상태가 악화일로였다. 경영진이 앞장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지만 채 전 사장은 재임 기간 16차례 해외 출장을 다니며 일평균 87만 원을 숙박비로 썼다. 해외 출장 시 숙박비를 무제한 지급한다는 규정을 두다 보니 3년여간 임원 출장비는 공무원 상한액을 7600만 원 이상 초과했다.
채 전 사장의 ‘황제 출장’은 가스공사가 수조 원의 손실을 보면서도 성과급 잔치를 벌이며 방만 경영을 일삼은 것과 무관치 않다. 지난해 가스공사 임직원 34%가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았고, 정부 지침을 어기고 저리의 사내대출을 이어갔다. 이런 식으로 운영돼 왔으니 올 5월 경영 정상화를 위해 부동산 매각, 임금 동결 등 15조 원 규모의 자구안을 내놨지만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스공사 외에도 감사원이 적시한 공기업 불법·방만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한국남부발전 직원들은 내부 정보를 빼돌려 사택을 싼값에 사들인 뒤 회사를 상대로 100억 원에 매입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사택을 활용한 ‘알박기 투자’다. 수자원공사 직원은 아버지 명의로 토지보상금을 허위로 받아갔고, 토지주택공사·철도공사 직원은 근무시간에 경마장을 드나들다 적발됐다. 농어촌공사는 77억 원을 들여 직원 5000여 명에게 노트북을 일괄 지급했다.
공기업의 방만 행태를 관리 감독하고 감시해야 할 정부 또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번 감사에서 산하 공기업 직원들에게 업무와 무관한 식사비 등을 890차례나 법인카드로 대신 결제하게 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도 적발됐다. 비효율·방만 경영과 정부의 감시 부재 속에 공기업이 도덕적 해이의 온상이 된 것이다. 공공부문 개혁이 실질적 성과를 내려면 대대적 구조조정과 함께 만연한 도덕적 해이를 뿌리 뽑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