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3조4000억 엔(약 30조6000억 원)을 추가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일본 현지 보도가 나왔다. ‘특정반도체기금’ 등 반도체 관련 기금 3곳에 예산을 더 투입하는 방식이다. 일본 정부가 최근 2년간 반도체 분야에 지원한 2조 엔의 1.7배에 달하는 규모다. 일본 반도체 기업 연합인 라피더스에 6000억 엔, 대만 TSMC의 일본 내 두 번째 공장에 9000억 엔 등 구체적인 지원 규모도 거론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대만에 뒤처진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목표로 절치부심하고 있다. 최근에는 50년 이상 묶어 왔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규제를 풀어 농지와 임야에도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반도체 등의 자국 내 생산량에 비례해 세금 우대 혜택을 주는 새로운 감세 제도도 검토하고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연합(EU), 대만 등 세계 각국은 정부 보조금 지원, 세제 혜택 등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첨단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국도 초격차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에 나섰지만 양과 질 모두 뒤처져 있다.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 세액공제를 확대했지만 같은 금액을 투자해도 한국에 투자하는 기업이 내야 할 세금은 대만보다 30% 이상 많다.
7월 반도체 2곳을 포함해 7곳의 첨단산업 특화단지를 지정하고도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반도체 특화단지의 기반시설 조성 비용을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확정되면 착공 시점에 맞춰 지원하겠다는 말만 내놓고 있다. R&D 예산 삭감 방침에 휩쓸려 내년 반도체 분야 5대 핵심 기술개발 사업 예산은 전년 대비 평균 18%, 인공지능(AI) R&D 예산도 43%나 줄었다.
정부는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고 국가 총력전”이라고 강조하지만 비장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반도체 특화단지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를 제거해 조성 속도를 높이고, 경쟁국 수준으로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등 필요한 지원책을 더 발굴해야 한다. 한번 밀리면 따라잡기 힘든 첨단산업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투자 촉진 정책을 더욱 과감하고 신속하게 실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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