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어제 마지막 회의에서 단일 연금개혁안 마련에 실패하고 소득대체율 인상을 포함한 복수의 개편안을 최종 보고서에 담기로 했다. 지난달 2일 공청회에서 발표한 안은 ‘더 내고 늦게 받는’ 18가지 시나리오였는데 최종안에서는 ‘더 받는’ 안이 추가돼 경우의 수가 더 늘어나게 됐다. 올 4월 자체 개혁안을 내기로 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활동 기한을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재차 연장한 가운데 정부 자문기구마저 맹탕 개혁안을 내놓으면서 연금개혁이 표류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재정계산위는 지난 공청회에서 내는 돈(보험료율)을 12∼18%로 인상하고 연금 수급 시작 연령은 66∼68세로 늦추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최종 보고서에서는 받는 돈을 45∼50%로 인상하는 안을 추가해 개혁안의 가짓수를 더 늘려 놓았다. ‘더 받는’ 시나리오가 빠진 안이 공개된 후 비판 여론이 제기된 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지난 정부는 4개의 시나리오를 내놓았다가 개혁이 무산된 바 있다. 합의안으로 국민 여론을 한데 모으기는커녕 개혁의 동력만 떨어뜨린 전문가 집단의 무책임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받는’ 안을 제안한 쪽에서는 연금의 본질은 노후 보장이고,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보험료를 올리는 데도 저항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받는 돈을 늘리면 연금재정이 고갈되는 시점은 몇 년 늦춰질 뿐이어서 개혁의 효과는 거의 못 보게 된다. 연금재정이 바닥을 드러내면 그 해 걷어 그 해 주는 부과식으로 바뀌게 돼 근로자들은 월급의 최대 37%를 보험료로 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윗세대 연금으로만 월수입의 37%를 떼이고 나면 뭘 먹고 사나.
이제 연금개혁의 공은 정부로 넘어왔다. 정부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이달 말까지 국회에 개혁안을 제출해야 한다. 재정계산위는 ‘올해 연금에 가입한 20세 청년이 평균 기대수명인 90세까지 안정적으로 연금을 받도록 한다’는 재정 목표를 제시했다. 연금 고갈 시점을 2093년으로 늦추는 목표로 이 정도는 돼야 청년 세대도 연금개혁을 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몇 안 된다. 정부는 장기 연금재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단일안을 내고, 국회는 “21대 국회 임기 안에 연금개혁을 끝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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