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에 수록된 시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폴란드 전 국민이 사랑하는 이 시는 쉽고 단순한 시어로 정곡을 찌른다. 어제는 한 송이 장미꽃이던 사람이 오늘은 돌멩이같이 느껴지는 삶. 반복되는 하루도 없고, 다음 기회도 없는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이야기한 구절에서 이어지는 대목이다. 모든 것이 사라질 내일과 필멸의 무용함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를 심보르스카는 왜 아름답다고 말한 것일까?
책은 언뜻 단단하고 견고해 보이지만 물질과 비물질, 존재와 비존재를 오가는 기묘한 성질이 있다. 작가의 사유와 서사가 손에 잡히는 책으로 변한다. 책은 독자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생각으로 변해 사막에 뿌린 물 한 컵처럼 사라진다. 반복은 없다. 내가 읽은 책과 네가 읽은 책이 다르고, 몇 년 전 읽은 책은 오늘 읽은 책과 또 달라진다.
책을 만들면서 편집자도 존재했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하는 일을 거듭한다. 누구보다 그 글을 많이 읽었지만 독자는 아닌 사람. 구두점 하나까지 살피느라 애쓰지만 작가는 아닌 사람. 당사자도 주변인도 아닌 채로 작품을 돌보고 응원하는 일은 무척이나 강박적이고 혼란스럽다.
기묘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늘 그렇듯 책과 책 만드는 일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변주하되 반복하지 않는 문장들이 물결처럼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우리는 결코 어제와 같을 수 없다. 사라지고 달라지기에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비록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달라도 어깨동무하며 일치점을 찾아보자고 말하며 끝나는 시처럼, 읽는 이의 마음속에서 새롭게 태어날 아름다운 물방울들을 상상하며 오늘도 기쁘게 사라지고 있다. 심보르스카도 그런 마음을 이야기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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