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새 도심개발 수단
‘개방형 녹지’
재개발시 공원 만들면 건물 더 높이… 힐튼호텔-세운상가 등 잇달아 개발
“경관 훼손에 과도한 혜택” 우려… 시민 활용도 높여 특혜 시비 없애야
《서울시가 추진하는 ‘개방형 녹지’가 최근 새로운 도심 개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개방형 녹지는 말 그대로 시민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일종의 도심 미니 공원이다. 서울시는 부지의 30% 이상에 개방형 녹지를 조성하면 높이 제한이나 용적률 제한 등을 완화해 건물을 더 높이 지을 수 있게 했다. 중구 밀레니엄힐튼호텔, 종로구 세운상가 등 서울 도심의 ‘노른자 땅’의 개발 카드로 개방형 녹지가 부상하는 것이다. 도심 녹지 확보와 다채로운 스카이라인 조성 등을 위한 것이지만 과도한 혜택이라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대개조’의 일환으로 언급한 세운상가. 1968년 완공된 만큼 노후화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 도시재생 등 다양한 개발 방안이 나왔지만 모두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사람 나이로 환갑이 다가왔는데도 소유권이 잘게 쪼개져 유지 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최근에는 83kg짜리 콘크리트 외벽 일부가 떨어지며 상인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세운상가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 서울시가 새롭게 제시한 개발 수단이 바로 ‘개방형 녹지’다. 세운상가 일대에 도시정비형 재개발을 추진할 때 시민들이 쉽게 오갈 수 있는 공원을 만들면 용적률 인센티브와 높이 완화를 함께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 공원 만들면 규제 완화 “개발에 물꼬”
서울시가 내건 개방형 녹지 조건은 까다롭다. 건물이 들어설 대지와 보행로가 절반 이상 맞닿아야 한다. 시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다. 식물을 무릎 높이 정도로 심는 녹지나 차량 진입을 막는 말뚝인 ‘볼라드’ 등 접근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두지 못한다. 나무는 지하고(곧게 뻗은 줄기에서 뻗어나온 첫 가지까지의 높이)가 높은 종류를 심어 시민 보행에 지장이 없도록 하고, 나무가 크게 자랄 수 있도록 지하 깊이도 3m 이상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제한에도 개방형 녹지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서울시청 옆 고 박태준 포항제철 명예회장 집무실이 있던 곳으로 알려진 금세기빌딩이 대표적이다. 현재 13층에 그치는 낡은 빌딩이지만, 올해 9월 이 빌딩은 약 22층(113.6m) 높이로 재개발하기로 개발계획을 확정했다. 그 대신 땅 면적의 3분의 1(32.9%)을 개방형 녹지로 조성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렸다. 서울시청과 롯데호텔, 더플라자호텔 등을 마주한 핵심 입지에 위치한 만큼 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프라임급 오피스 등을 유치해 개발 수익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올해 5월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인근에 개방형 녹지를 도입해 약 114m 높이(지상 24층) 건물을 짓는 개발계획이 통과된 것을 기점으로 최근 5개월간 도심 재개발 지구 6곳에서 정비계획이 잇달아 확정됐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통과 건수가 총 9건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개방형 녹지가 서울 도심 재개발의 물꼬를 텄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울시가 올해 7월 개방형 녹지를 도입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힌 곳은 총 10곳에 이른다.
개방형 녹지에 대한 호응이 좋은 것은 시가 개방형 녹지를 통해 사업자에게 관련 인센티브를 중복해서 부여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존에도 공개공지(일반인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소규모 휴식공간)를 조성하면 면적에 따라 용적률과 높이 제한을 완화하는 제도는 있었다. 그런데 개방형 녹지는 여기에 추가 인센티브를 주고, 최소 기준(대지 면적의 30%)을 만족하면 건물 4개 층 수준(20m)을 더 지을 수 있도록 완화하고 있다.
● 고층 스카이라인 만들며 녹지 확보
서울시는 개방형 녹지를 미래 서울 도심부 스카이라인과 보행공간을 함께 재편하는 핵심 수단으로 보고 있다. 최근 10년간 서울의 도시계획은 도심부 건물 높이를 90m 수준으로 유지하되 저층의 상가 등 보행자 수준에서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을 높이는 방식으로 용적률을 높이고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반면 최근에는 총 연면적은 이전과 같게 유지하면서 상가 대신 일반인이 쉽게 오갈 수 있는 녹지 같은 공공 공간을 만들고 그 대신 건물을 90m보다 더 높게 지을 수 있게 해 고층 스카이라인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이 도심 내 부족한 녹지 확보에도 효과적이라고 분석한다. 올해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 도심 기본계획(옛 역사 도심 기본계획)에 따르면 서울 도심 내 실질적 공원·녹지 비율은 3.2%에 그친다. 경복궁, 창덕궁 등 고궁과 낙산, 인왕산, 북악산, 남산 등 내사산(內四山)을 합하면 녹지 비율은 30%까지 되지만, 도심에서 누리는 녹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시계획업체 PMA의 유나경 대표는 “해외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바깥 활동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데 발맞춰 도심 건물에 녹지를 대폭 확대하는 추세”라며 “개방형 녹지는 이런 수요에 부합하는 제도”라고 했다.
● ‘중복 인센티브’에 특혜 시비도
하지만 새롭게 도입된 개념인 만큼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공개공지와 개방형 녹지는 중복되는 개념인데, 공개공지 인센티브에 추가 인센티브를 주는 게 과도한 혜택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공개공지 입구에는 계단이 있어 접근하기 어렵거나 활용도가 낮아 흡연장소로 쓰는 경우가 많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개방형 녹지를 조성하려면 지하 3m 깊이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는 지하 1개 층을 쓰지 못하는 것인 만큼 인센티브가 이중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개방형 녹지로 건물이 높아지면 남산 등 지역 특유의 경관을 가리는 등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힐튼호텔 재개발이다. 힐튼호텔은 남산 중턱(약 30m 고도)에 있는데, 개방형 녹지 인센티브를 적용받아 기존 23층(71.35m)보다 높이가 약 2배 높은 최고 38층(150m) 건물로 짓는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경관 훼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높이를 일부 낮추기로 가닥을 잡았지만, 공원이 호텔 뒤편에 조성되는 폐쇄적인 구조인 데다 공원 경계 대부분이 일반 도로와 맞닿아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현재 개방형 녹지를 질적으로 잘 조성할 것인가보다는 건물을 높게 올리는 수단으로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개발 초점이 건물 이용자보다 녹지에 초점이 맞춰져 주객이 전도됐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대로라면 대지 면적 3000㎡ 이하 소규모 필지에서 얇고 높은 형태인 ‘펜슬 빌딩’만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건축업계 관계자는 “해외 대기업 등을 유치할 수 있는 ‘프라임급’(연면적 6만6000㎡ 이상) 오피스를 짓는 계획에만 제한적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개발 명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녹지 조성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놀러 오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음악회, 바자회 등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지역을 브랜딩하는 ‘에어리어 매니지먼트(AM)’가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윤혁경 ANU건축사사무소 대표는 “현재 공개공지에서는 연간 60일 이내에만 문화·판촉 활동을 할 수 있는데 이는 에어리어 매니지먼트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라며 “개방형 녹지에서 소규모 영리 행위 등을 가능하게 해야 에어리어 매니지먼트가 활성화되고 매력적인 이벤트도 많아져 제도 취지에 맞게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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