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퇴장해 버린 건 목요일 밤 11시였다. 제도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보수 대통령이 내정한 후보자답지 못했다. 장관 자격을 못 갖췄다는 견해가 늘었다. 놀라운 건 금요일의 침묵이었다. 야당과 언론이 “드라마틱 엑시트”라고 비판하는데도 김행 본인과 국민의힘 누구도 공개 발언을 삼갔다.
대통령실에선 금요일 아침 정무수석이 ‘저강도’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도 이탈은 안 될 말이다. 청문회는 대통령실 정치력도 평가받는 자리 아니냐. 교체 건의를 미룰 일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은 없었다고 한다. 여의도와 국정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의 집단 침묵이었고, 투표장에 가려던 지지층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대통령에게 고언을 못 한다고 비판하기는 쉽다. 하지만 실천은 말처럼 쉽지가 않은 걸 안다. 중고교 교무실, 구청과 군청, 크고 작은 기업 등 삶의 현장에서 우리도 겪어 봤다. 미국이라고 다를 게 없다.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3년 전 백악관의 권력투쟁, 도널드 트럼프의 일탈과 전횡, 본인의 속마음을 회고록(‘그 일이 일어난 방’)에 기록으로 남겼다. 워싱턴의 싸움닭 볼턴 자신도 트럼프 앞에서는 속마음과 달리 말했다. 트럼프의 어리석은 실수라고 책에서 묘사한 발언을 듣고도 면전에서는 제대로 말을 못 했다고 고백하듯 썼다.
대통령은 이런 불변의 속성을 뒤집어 봐야 한다. 보고와 조언이 ‘100% 진심’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A라고 답해야 하지만 B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든 오고, 대통령은 까딱하면 참모와 멘토도 동의한 ‘우리의 생각’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인내하는 열린 귀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
대통령이 이견을 언짢아한다는 말이 돌고 있다. 문재인의 버럭, 박근혜의 레이저 등 어느 대통령인들 이런 게 없었을까마는 참모들을 체념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말이 더 퍼지면 대통령의 매력 자본을 갉아먹는다. 대통령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내년 총선에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표를 달라”는 호소가 먹힐까.
윤 대통령이라면 반론을 펴고, 항명에 가까운 결기를 보이는 참모를 좋게 평가할 것이란 짐작이 있었다. 오늘의 윤 대통령을 만든 것은 국정원 댓글 사건, 조국 수사였다. 살아있는 권력이 적당히 덮어줬으면 하는 것을 거부한 사건들이었다. 검사 윤석열은 ‘고위 공직자라면 손해 보더라도 이쯤은 해줘야 한다’는 민심을 충족시켰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한마디는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다. 이런 대통령은 용기를 내는 의원과 참모에게 다른 대통령들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하고 배려할 법하다. 풍문은 반대로 돌고 있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2.0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도어스테핑이 끝난 뒤 1년 가까이 중단된 취재기자 질문받기를 놓고 보자. 달라지려 한다면 기자회견은 최대한 빨리 재개해야 한다. 형식은 어때야 할까. 기자들에게 불편한 질문도 받는 정식 회견과 소수의 패널을 마주하고 둥글둥글한 질문을 받는 간담회 중 어느 쪽이 논의될지는 머잖아 드러날 거다. 상상해보자.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그 시절 정면승부를 선택한 검사 윤석열에게 기자회견 방식을 묻는다면 어느 쪽을 건의했을지 궁금하다.
대통령실을 향해 대통령의 대화법을 바꾸라는 주문이 많다. 대통령은 지금보다 더 귀를 열고 집권당과 참모들에게 반대를 허(許)할 수 있을까. 권력 앞에서 할 일 하고, 할 말 하던 제2, 제3의 윤석열을 발굴해 곁에 두고 또 내년 총선에 공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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