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 상임감사 자리를 금융감독원 출신 퇴직자들이 모두 차지했다고 한다. 은행을 상대로 감독권을 휘두르던 금감원 인사들이 은퇴 후 연봉 수억 원을 받으며 은행 감사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전문성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하지만, 줄지어 터져 나온 금융사 내부통제 부실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런 변명이 무색하다.
6월 말 현재 5대 은행의 상임감사위원은 모두 금감원에서 은행 업무를 담당했던 부서장이나 임원 출신이다. 공직자윤리법은 금감원 고위직이 퇴직 후 3년간 업무 유관기관에 취업하는 걸 제한한다. 이 규정을 피하기 위해 금융권 내의 다른 업종에서 경력을 세탁한 후 은행으로 옮긴 ‘우회 재취업’ 사례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2018년 이후 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심사에 오른 금감원 출신자 170명 중 승인을 못 받은 건 5명뿐이다.
전체 금융권에 취업해 있는 금감원 출신자만 93명이다. 은행이 24명으로 제일 많다. 금감원 수장인 금감원장 출신 인사들마저 인터넷은행, 보험사, 카드사의 사외이사로 지금도 재직 중이라고 한다. 문제는 금감원 임직원들이 한때 상사, 동료였던 이들이 감사 등 고위직에 있는 금융사를 상대로 엄정하고 객관적인 감독의 잣대를 들이대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금감원 출신 임원을 영입한 은행의 경우 그렇지 않은 은행보다 감독 당국의 제재를 받을 확률이 16.4%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금감원 출신자를 고용하는 것만으로 제재 회피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최근 금감원 출신 인사들이 역대 상임감사를 맡아온 은행에서 대형 횡령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들이 해온 금융 감독의 ‘바람막이’의 부작용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정부는 전현직 금감원 임직원의 사적 접촉 제한, 취업심사 강화같은 대책을 내놨다. 그래도 ‘금피아’(금감원+마피아)의 아성이 흔들린다는 조짐은 없다. 금융회사들이 보험 들 듯 감독당국 퇴직자를 영입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퇴직 후 고연봉 등 안락한 전관예우 혜택을 누리는 금피아의 부적절한 관행을 근절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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