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가을이 아쉽다면[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17일 23시 21분


<54> 양희은 ‘가을 아침’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이맘때쯤이면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들려올 것이다. 큰 인기를 끈 적은 없지만 34년 동안 노래는 살아남았다. 이런 노래를 보통 ‘스테디셀러’라 부른다. 한 시절 엄청나게 반짝였지만 금세 사라지는 노래들도 있다. 이 노래는 ‘베스트셀러’였던 적이 없다. 하지만 스테디셀러가 잠깐의 베스트셀러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경우도 많다. 정확히 이 노래가 그렇다. 매해 가을이 되면 사람들이 노래를 찾게 한다. 단 한 해의 예외도 없었다. 가을이 존재하고, 노래를 찾는 마음이 존재한다면 그 햇수는 영원할 것이다. ‘가을 아침’ 이야기다.

이제는 아이유의 목소리로 더 유명할지 모른다. 아이유의 노래인 줄 아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희은의 목소리로 먼저 들었고, 노래가 수록된 앨범 ‘1991’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생각하면 내게 ‘가을 아침’은 양희은의 것일 수밖에 없다. 1991년의 나에게 양희은은 그때도 이미 오래된 가수였다. ‘아침이슬’과 ‘하얀 목련’을 불렀던 가수, 왠지 역사 속에 존재하는 것 같은 이미지였다. 그래서 ‘1991’은 더 충격이었다. 내가 갖고 있던 편견 혹은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다.

‘1991’ 앨범이 나온 1991년은 양희은이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된 해였다. 불혹의 나이가 된 양희은은 나직이 삶을 돌아보고 사랑이 끝나고 난 뒤를 이야기했다. 1991년의 마흔은 그래야 하는 나이였다. 또 그는 암을 앓고 난 뒤 새 삶을 살고 있었다. 여러모로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양희은은 그 마음처럼 다르고 새로운 걸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목소리와 ‘마흔 즈음에’의 마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해줄 인물로 젊은 기타리스트 이병우를 택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둘은 ‘1991’에서 만나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 풍경은 외롭고 높고 쓸쓸했다. 이병우가 곡을 쓰면 양희은이 가사를 붙였다. 양희은이 노래하면 이병우는 기타를 연주했다. 오직 양희은의 목소리와 이병우의 기타 소리만이 존재하는 음악 사이로 수많은 그리움과 쓸쓸함과 고즈넉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운 친구에 대해, 지나간 사랑에 대해, 계절의 변화에 대해, 잠들기 전의 상념에 대해 양희은은 어른의 감정으로 이야기했다.

‘가을 아침’은 그래서 앨범 안에서 조금은 튀는 노래일 수 있다. ‘우리 처음 만난 그해’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한 정서가 앨범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또 이 노래는 양희은이 아닌 이병우가 가사까지 직접 썼다. “토닥토닥 빨래하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둥기둥기 기타 치는 그 아들의 한가함이” 어우러진 가사는 이병우의 자전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노래는 다른 곡들에 비해 다소 가볍기도 하지만 어두운 분위기를 환기해주는 역할을 한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하는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양희은의 ‘가을 아침’을 찾아 듣는다. 이 좋은 계절이 점점 짧아져서, 노래와 어울리는 날들이 점점 줄어들어서, 그래서 아쉽다.

#양희은#가을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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