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플레이션, 라면플레이션, 빵플레이션…. 생활물가가 치솟으면서 장바구니 품목에 ‘∼플레이션’을 붙인 신조어가 쏟아지고 있다. 가격이 급등하는 제품군에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붙인 표현들이다. 설탕과 우유, 소금 가격이 오른 것을 놓고는 영어 단어를 조합한 슈거플레이션, 밀크플레이션, 솔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월급 빼고는 다 오른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니 무슨 품목으로 유사 신조어를 만들어도 어색하지 않다. 김치플레이션만 해도 올해는 유난하다. 배추 한 포기 값이 6600원으로 평년보다 13% 올랐고 고춧가루와 열무, 마늘 같은 원·부재료 값도 모두 올랐다. 생강의 가격 상승률은 68%가 넘는다. 국수 같은 면류나 햄버거로 부담 없이 한 끼를 때울 수 있었던 것도 옛말이다. 누들플레이션, 버거플레이션 등으로 직장인들의 지갑은 더 얇아진다. “점심 먹으러 나가기가 무섭다”는 하소연은 ‘런치플레이션’이라는 또 다른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노량진 고시생들은 ‘컵밥플레이션’에 울상이다.
▷가격은 오르지 않았는데 더 비싸진 것들도 적잖다. 식품업체들이 재료 함량이나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혹은 ‘스킴프플레이션’의 결과다. ‘줄어든다(shrink)’ ‘지나치게 아낀다(skimp)’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조어로, 소비자들이 느끼지 못하게 슬쩍 값을 올리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교묘하다. 일부 참치캔과 분유통 용량, 만두 같은 가공식품 중량은 이미 10∼20g씩 줄어들었고 주스 과즙 함량도 낮아졌다. 해외 상황도 다르지 않아 프랑스 카르푸 매장에는 이런 제품들이 30종류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인플레이션은 코로나19 기간 각국의 경기부양책과 이로 인한 과잉 유동성, 가뭄 등 이상기후 여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커진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까지 벌어지면서 국제 유가마저 더 오를 조짐이다. ‘이란 참전’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유가가 배럴당 최대 15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충격적 전망도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내놓은 ‘글로벌 인플레이션 재점화 가능성’ 경고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폭발적인 물가 상승으로 국내 실질임금은 5개월 연속 하락세다. 실제로 손에 쥐는 월급은 계속 줄어드는데 물가상승률은 4%대에 재진입할 태세다. ‘소리 없는 도둑’이자 지갑을 갉아먹는 좀벌레라는 인플레이션이 심지어 끈적끈적해지고 있는 것이다.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경기에 쌓여가는 가계 부채, 고금리 부담까지 겹치면서 삶은 점점 팍팍해지는 중이다. 더 공격적으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면 서민들의 허리는 휘다 못해 부러져 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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