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10 국회의원 총선이 6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선거구 획정과 위성정당 문제 등 선거법을 다루는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개점휴업 상태다. 정개특위가 주관하는 선거구 획정 작업은 올 3월 1차 시한을 넘긴 데 이어 2차 시한(12일)도 아무런 소득 없이 지나갔다. 결국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1년 전까지 확정한다는 공직선거법 조항은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다. 오늘로 D-174일이다. 이런 상태라면 12월 12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더라도 후보자들은 운동장이 어딘지도 모른 채 뛰어야 하는 ‘깜깜이 선거’가 될 공산이 커 보인다.
더 중요한 문제는 선거구 획정보다 선행되어야 할 선거구제나 의원정수 논의가 전혀 진전이 없다는 점이다. 정개특위는 3월에 3개의 ‘지역구+비례대표’ 개편안을 내놓았지만 추가 논의는 진전이 없다. 야권은 지역구는 유지하되 현재 47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더 늘리자고 주장하지만, 여당은 아예 의원정수를 축소하자고 맞서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3년 전 21대 총선에서 대표적인 꼼수로 지적된 비례 위성정당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여야는 위성정당의 존폐를 놓고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느라 아직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선거법 협상의 큰 가닥도 잡히지 않았으니 선거구 획정은 언제 이뤄질지 기약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인구수 변동에 따라 서울 종로와 중구를 합치는 등 선거구 31곳을 조정 대상으로 확정했지만 어차피 본격적인 논의를 위한 밑그림일 뿐이다. 여야 논의가 차일피일 늦어질수록 선거일에 임박해 여야가 당리당략 차원에서 선거구를 찢어 붙이는 게리맨더링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선거법 논의의 의사결정권을 쥔 여야 지도부가 리더십 위기와 사법 리스크를 겪고 있어서 선거법 현안에 집중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각 당의 공천 갈등이 불거진다면 선거법 논의는 더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하지만 선거구 획정 등이 졸속으로 이뤄진다면 현장에서 뛰는 후보자는 물론이고 한 표를 행사할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횡포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선거법 이슈는 사안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가 파장이 커서 단칼에 무 자르듯이 해결될 수 없다. 이러다 지난 총선 때보다도 더 왜곡된 선거구제로 선거를 치르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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