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느(마리아네) 스퇴거(1934∼)와 마가렛(마르가리타) 피사레크(1935∼2023·사진). 두 오스트리아 간호사는 20대에 대한민국 소록도로 왔다. 40년간 한센병 환우들을 돌보다가 70대가 되어 기력이 쇠하자 다른 이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며 편지 한 장만 남기고 2005년 조용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외면당했던 땅 소록도에서 생을 바쳐 봉사한 두 외국인의 행적은 많은 이에게 큰 감동을 줬다. 두 분 덕에 건강을 찾은 환우들의 증언이 쏟아졌고, 이야기는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됐다.
나는 광주대교구 소록도 성당의 의뢰로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2017년)을 썼다. 그 덕에 종종 두 할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는 사이가 되었다. 사투리를 구사하시는 두 분은 늘 따뜻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둘 중 ‘작은 할매’ 마가렛과는 점차 연락이 뜸해졌다. 처음엔 “작은 할매, 전기 쓴 작가예요. 잘 지내셨죠?” 하고 인사드리면 반가워하셨지만, 어느 때부턴가 “…누구라고?” 하며 기억하지 못하셨다.
지난달 29일 ‘마가렛이 낙상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만감이 교차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2016년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겨울날 오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요양원의 작은 방이 떠올랐다. 말없이 창밖 공동묘지를 보던 작은 할매 마가렛은 무척 평온해 보였다. 문득, 이런 질문이 나왔다. “할머니, 사랑이 뭔가요?” 마가렛이 한참 뒤 대답했다. “사랑은…상대방에게 자유를 주는 거. 자유롭게, 서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두 분도 환우들에게 거동과 소통의 자유라는 사랑을 선사하고 싶었던 걸까. 이미 반쯤은 지상이 아닌 영원에 발을 담근 듯 묘하게 비어 있던 드맑은 갈색 눈동자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작은 할매, 마가렛은 이제 이 땅 어느 곳에도 없다. 시신마저 남김없이 인스브루크 의과대학에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한 뒤 떠나셨다.
며칠 전 큰 할매 마리안느께 전화를 드렸다. 천식으로 다소 가쁜 숨소리 너머 가라앉은 목소리. “떠난 작은 할매 생각하면…마음 아프지. 근디, 질투도 나.” “왜요?” “얼마나 좋겠어, 먼저 하느님 곁에 갔잖아! 부러워. 나도 이제 아흔이야. 가도 돼요, 언제든지.” 모두 더 가지지 못해, 더 오래 살지 못해 불행한 이 시대에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존재는 분명 희귀하고, 또 희귀하다.
마가렛 할머니 방 벽에 붙어 있던 글자 ‘無(무)’가 떠오른다. 그렇게 당신은 무로 와서 무를 실천하고 가셨다. 지금쯤 생전에 그토록 사랑한 소록도 푸른 바다를 실컷 돌아보셨을까? 이제 당신의 자유도 만끽하시길. 천국에서 평화와 안식 누리시기를,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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