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정은]구급차 타고 행사장 간 연예인… 위독한 생명 구할 길 막는 범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19일 23시 45분


김정은 문화부 차장
김정은 문화부 차장
차들로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구급차에는 생명이 위독한 환자가 분초를 다투며 병원을 향하고 있다. 운전자들은 환자를 이송하는 구급차를 위해 길을 터주며 도로 위 ‘모세의 기적’을 연출한다. 누군가를 위해 양보한 1초가 생명을 살릴 1초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갖고 말이다.

이를 악용하다 적발된 연예인들이 최근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룹 god 출신 가수 김태우는 2018년 3월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에서 사설 구급차를 타고 서울 성동구 행사장까지 이동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김태우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돼 벌금 500만 원이 확정됐다. 김태우는 “변명의 여지 없이 제 잘못임을 인정하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공식 사과했다. 당시 김태우 소속사 측이 사설 구급차 기사에게 지불한 금액은 30만 원이었다.

이전에도 사설 구급차를 이용하다 적발된 연예인들은 심심찮게 있었다. 2021년 10월 유명 포크그룹 가수는 충북 청주에서 경기 남양주 공연장까지 구급차를 타고 이동해 구설에 올랐다. 2013년에는 개그우먼 강유미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구급차 내부 인증샷과 함께 “부산 공연에 늦어 구급차라는걸 처음 타고 이동하는 중….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라는 글을 올려 비판을 받았다. 2018년 울산의 한 사설 구급차 업체가 모 연예인을 공항, 행사장으로 데려다줬다가 처벌을 받기도 했다.

구급차는 어쩌다 연예인들의 ‘총알택시’가 됐을까. 행사 한 건당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을 받는 유명 연예인들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그들이 구급차를 악용해 교통 체증을 뚫으려는 이유다.

3년 전 방송인 김구라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한 공연 기획 에이전시 관계자가 밝힌 연예인의 건당 행사비는 트로트 가수 송가인이 3500만 원, 임영웅 영탁 김호중 장민호 2000만 원, 걸그룹 마마무는 5000만 원 선이었다. 이들 정도의 인기가 있는 연예인들이라면 당시 비슷한 가격대의 행사비가 책정됐을 테고, 3년이 지난 지금은 더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보니 일부 소속사들은 수익을 위해 이동거리와 시간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스케줄을 잡기 일쑤다. ‘걸리지만 않는다면’이란 안일함에 구급차에 탑승한 연예인과, 수익에 눈멀어 불법 영업을 자행한 사설 구급차 업체로 인해 사설 구급차 이용 논란은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연예계 단골 뉴스가 되고 말았다.

유명인에 대한 뉴스란 늘 그렇듯, 파급력이 크다. 관련 기사에 “앞으론 사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연예인이 불법 이용하는 게 아닐까’란 의심부터 들것 같다”, “(길을) 양보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었다”는 댓글이 심심찮게 보인다.

구급차를 탄 연예인들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벌금 500만 원 무게의 범법 행위 그 이상이란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들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사회적 합의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들에게 지급하는 고가 행사비를 책정하는 기준은 ‘대중의 인기’다. 자신들의 몸값을 올려준 대중의 목숨을 볼모로 더 이상 기만 행위를 벌여선 안 된다.

#구급차#행사장#사이렌#환자 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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