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강아지를 만지듯 잇몸에 손가락을 대본다 한 번도 알지 못하는 감각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일들이 일어나서 살 만한 것인가 이빨로 물어뜯는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말한다 이를 잘 숨기고 필요할 때 끈질기게 물어뜯으라고 이렇게 부드러운 말 속에 피의 비린 맛이 숨어 있다니 그러나 그들은 늘 자신의 것을 놓치지 않는다 이제는 살고도 죽고도 싶지 않은 나이 오늘도 나는 시장에 간다 뺀 이를 다시 사고 싶어 그러나 내 잇몸에 맞는 것은 없고 구름이 핏빛 솜뭉치로 보인다, 라는 구절을 생각해본다
― 김성규(1977∼)
나의 아버지는 시인이었는데 월급을 타면 서점을 돌며 문예지를 사셨다. 30년이 지나고 보니 나도 매달 문예지 사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모은 잡지에서 기억하고 싶은 시가 나오면 받아 적었다. 십 년 넘게 옮겨 적은 작품이 수백 편이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다시 헤아렸다. 그랬더니 김성규 시인의 작품이 가장 여러 편 남는다. ‘불길한 새’, ‘두 눈을 감고 노래해도’, ‘잉어 사육’ 같은 시는 십수 년 지난 후에도 생생하다. 시가 잊히지 않아 시인의 이름도 잊을 수 없는 그런 경우다.
1977년 충북 옥천, 금강 근처에서 태어났다는 이 시인은 비참의 대가다. 그는 인간의 존재론적인 비참이나 철학적인 비참이 아니라 실제 비참한 감각을 다룬다. ‘바로 지금 나’의 견딜 수 없는 비참함에 대해 이만큼 정확하게, 아닌 듯 의뭉스럽게, 정곡을 찌르는 듯, 현실과 환상을 절묘하게 섞어가며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래도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과 ‘이래도 살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 그의 시는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의 불안감과 ‘어떻게든 살아낸다’의 읊조림 사이에 시인이 있다. 그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것이 진짜 인간의 현실 아닌가. 오늘은 시를 겨우 한 편만, 그것도 일부만 소개하게 되어 무척 죄송하지만, 분명히 김성규는 오래 기억할 만한 시인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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