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유럽의 病者” 소리 듣는 독일
한국, 제조업 중심-특정 품목 편중
對중국 과도한 의존까지 닮은꼴
구조개혁 손 놓고, 경기 낙관론 펼 때 아냐
“올해 하반기 경제가 상반기보다 2배 정도 성장할 것으로 본다. IMF가 전망한 내년 성장률은 GDP 1조 달러가 넘는 국가 중 최고 성장률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지난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말이다. 줄곧 강조해 온 상저하고(上低下高)론에 ‘금년은 어렵지만 내년에 나아질 것’이라는 ‘금저래고(今低來高)’론이 보태졌다.
추 부총리는 앞서 15일에는 “물가도 회복 국면에 진입했고 고금리도 대체로 천장을 확인하고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며 물가와 금리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요약하면 한국 경제가 길고 긴 겨울에서 벗어나 따뜻한 봄날을 맞고 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사뭇 다르다. 추 부총리가 ‘고금리 천장’론을 꺼낸 지 1주일도 안 돼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6년간 유지돼 온 ‘5% 천장’을 뚫었다.
현재 한국은 미국보다 기준금리가 2%포인트나 낮은데도 가계부채와 경기 부담 때문에 안간힘을 다해 ‘동결’로 버티고 있다. 그러나 미국 금리가 추가로 상승 행진을 시작하면 둑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앞서 추 부총리가 내년 한국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근거로 제시한 IMF 전망도 의지할 것이 못 된다. IMF가 ‘2023년 경제전망’을 처음으로 내놓은 지난해 1월 당시 제시한 한국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는 2.9%였다. 그러나 지난해 7, 10월과 올해 1, 4, 7월 내리 5번 연속 하향 조정을 한 끝에 반토막 수준인 1.4%까지 떨어뜨렸다. 내년 성장률 전망도 이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더구나 지금처럼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으로 글로벌 경제질서가 재편되는 상황에서는 단순한 거시지표보다 산업 구조적인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비슷한 제조업 강국인 독일이 최근 ‘유럽의 병자(sick man)’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휘청이고 있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과 1, 2년 전까지만 해도 ‘경제 슈퍼스타’ ‘유럽의 성장엔진’으로 칭송받던 독일이 ‘병자’로 추락한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꼽는다. 주어만 바꾸면 섬뜩할 정도로 한국에 들어맞는 이야기다.
우선 높은 제조업 비중이다. 최근 유일하게 잘나가는 미국 경제의 제조업 비중은 2021년 기준으로 10.7%가량이다. 독일은 그 두 배인 20.8%다. 한국은 이보다 더 높은 27.9%다. 자유무역이 확산되고 전 세계 교역량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라면, 제조업 제품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플러스’다. 하지만 미중 간 패권 경쟁으로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한국과 독일 모두 서비스업 등 내수 비중이 높은 나라들에 비해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제조업 중에서도 특정 산업에 대한 편중된 구조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독일은 전체 수출의 10%가량을 자동차가 차지하는데, 자동차 산업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에 뒤처진 것이 경제 부진의 결정적 원인 중 하나를 제공했다.
한국은 더 심각할 수도 있다. 반도체에 대한 한국의 수출의존도는 20%에 육박한다. 최근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는 조짐이 보인다고는 하지만 반도체 제조 시장을 대만과 함께 사실상 ‘싹쓸이’하던 호시절이 다시 올지는 의문이다. 반도체 설계·소재·장비 등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미국과 일본이 직접 제조에 뛰어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 독일 경제가 고전하는 주된 요인 중 하나다. 이 또한 한국이 독일보다 나을 게 없다. 지난해 독일의 수출액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7%였다. 한국은 약 3배에 해당하는 22.8%였다. 중국 시장이 위축되거나 또는 경합 품목에서 중국에 따라잡힐 때 받는 충격이 독일보다 훨씬 크다.
굳이 독일의 위기에서 시사점을 찾을 것도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1인당 잠재성장률이 2030년 이후에는 0%대로 떨어져 38개 회원국 중 캐나다와 함께 공동 꼴찌를 할 것이라는 전망을 2021년 내놓은 바 있다.
한국 경제의 추락을 막을 유일한 해법은 노동 연금 교육 등 구조개혁을 서두르는 것인데도, 현 정부는 어느 것 하나 작은 ‘첫발’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한가로운 낙관론을 읊조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국 경제는 지금 ‘아시아의 병자(病者)’로 전락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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