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 패션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은 패셔너블하다고 여겨지지 않던 옷을 멋지게 입고 다니는 걸 말한다. ‘발레코어’는 발레복을 활용한 패션이다. 발레 튀튀 스커트와 레오타드, 플랫슈즈, 리본 장식 등을 착용한다. 발레 특유의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 덕분에 케이팝 걸그룹 화보나 뮤직비디오 의상으로 많이 쓰였다. 예를 들어 뉴진스의 ‘GET UP’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은 하늘거리는 드레스에 리본이 어우러진 발레코어 룩을 선보인다.
블록코어라는 말도 있다. 블록은 사내 녀석이라는 뜻의 속어로 이쪽은 소년 같은 룩이다. 화려한 컬러의 축구 유니폼에 청바지를 입고 아디다스 삼바나 가젤 같은 스니커즈를 신는 게 특징이다. 발레코어보다는 접근 장벽이 낮은 데다 앞서 스포츠 룩 유행이 있었기에 축구 예능 등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 둘을 합친 것이 바로 ‘블로케트’ 패션이다. 케트는 코케트(coquette)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요부’라는 뜻이다. 블로케트 패션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성적 패션과 남성적 패션을 합친 패션이다. 축구 유니폼에 레이스 스커트를 입고, 운동복인 트랙톱에 리본을 장식하는 식이다.
블로케트는 처음 발레와 축구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들을 넘어 여러 남성 아이템과 여성 아이템을 한데 배치하는 식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스웨트 셔츠에 플리츠 치마, 오버사이즈 트위드 블레이저에 시어 스커트, 가죽 재킷에 리본 장식 등 둘의 대비가 클수록 이 패션은 빛을 낸다. 발레코어만으로는 일상에서 소화하기 어려워 화보나 의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만 소비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블록코어와 만나 실생활 적용 가능성을 높인 측면도 있다.
패션은 오랫동안 남성복, 여성복을 중심으로 각자 다른 세계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당연한 듯 보였던 이런 분류는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을 고정시키고 성 다양성을 포섭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리고 이 둘을 합칠 방법을 고민하면서 젠더리스나 유니섹스 패션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패션은 대부분 기존의 캐주얼한 남성복 영역 안에 여성을 집어넣으려는 경향을 보였고 이런 결과로 여성복의 역사가 지워지는 문제가 있다. 발레코어나 바비코어 같은 페미닌한 트렌드가 대두되는 건 이런 흐름 속에 나온 반동이라 볼 수 있다.
반대 해석도 있다. 해리 스타일스나 샘 스미스같이 여성 스타일을 즐겨 입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남성에게 여성복을 입게 하는 건 사회적으로 훨씬 어렵다. 하지만 미니 핸드백이나 진주 목걸이 같은 기존의 여성 아이템을 남성이 착용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패션이 남성 패션 안으로 진출했다는 해석이다. 아직 남녀 서로 입어 보지 못한 각자의 패션 영역이 많이 남아 있다. 과연 앞으로 또 어떤 패션을 이용한 새로운 통합 룩이 나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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