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싸게 이용할 수 있다면 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의 확장과 독점을 막을 명분이 있나. 섣불리 반독점 규제를 했다가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건 아닌가. 그간 빅테크(대형 기술기업)의 보호막이 되어 준 이 같은 ‘반독점의 역설’에 대한 대안을 찾으려면 미국 경쟁 당국과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회사인 아마존 간 ‘세기의 소송’을 지켜봐야 한다.
‘아마존 저격수’로 불리는 리나 칸 위원장이 이끄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달 말 마침내 아마존을 상대로 반(反)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예일대 로스쿨을 다니던 28세의 칸 위원장이 “현행법으로는 아마존의 교묘한 약탈적 가격 정책을 막을 수 없다”며 반독점법의 맹점을 지적한 ‘아마존 반독점 패러독스’ 논문을 발표한 지 6년 만이다. FTC는 이번 소송에서 아마존이 독점력을 불법적으로 이용해 자사 플랫폼에서 수십만 명의 판매자를 착취하고, 경쟁자를 방해하고, 소비자에게 과도한 비용을 부담시켰다고 주장했다. 아마존은 “사실과 다르다”며 맞서고 있다.
소송 결과에 따라 어느 한쪽은 치명타를 입는다. 법원이 아마존의 손을 들어주면 칸 위원장의 명성이 추락하고, 디지털 플랫폼과 빅테크에 대한 경쟁 당국의 규제 칼날은 크게 무뎌진다. FTC가 이기면 아마존은 최악의 경우 1980년대 AT&T처럼 기업이 해체되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또 빅테크 독과점에 비교적 관대한 자유방임적 반독점법 기류가 바뀌고 디지털 경제의 판이 흔들릴 수 있다. 미 전문가들이 이번 소송을 두고 “세대적 변화(generational change)가 일어나고 있다”고 평가한 이유다.
아마존은 사업 초기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가격을 낮춰 소비자를 모으고 입점하는 판매자를 늘렸다. 규모가 커지고 효율성이 높아지면 고정비용이 낮아지고 가격은 떨어져 고객을 더 모을 수 있다. 이런 식의 ‘플라이휠(외부의 힘 없이 관성으로 회전력을 유지하는 자동차 부품) 전략’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6년간 벼르던 칸 위원장이 소송의 칼을 빼든 건 저렴한 가격으로 몸집을 불린 아마존이 이제는 지배력을 활용해 소비자와 판매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뜯어오는 ‘추출(extraction) 모드’로 들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칸 위원장의 임기는 내년 9월에 끝난다.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애플 등과의 싸움에서 연거푸 진 그가 아마존이라는 거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소비자가 좋아하는 기업을 공격하는 건 정치적으로 승산이 없다”는 부담도 크다. 아마존을 지켜주는 수호신은 결국 세계 최고의 로펌이나 변호사가 아니라 기업을 사랑하는 소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선 아마존 플라이휠 전략을 따라 하며 몸집을 빠르게 불린 대표적 플랫폼이 쿠팡이다.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8월 역대 최고 2분기(4∼6월) 실적을 발표하면서 “플라이휠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은 아마존처럼 물건을 사고파는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며 판매자에게 물류 서비스도 제공한다.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와 유사한 와우 멤버십 제도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쿠팡 플레이를 운영하고 있다. 회원이 늘어나자 지난해 멤버십 비용도 2900원에서 4990원으로 올렸다. 올해는 창업 이후 처음으로 연간 기준 흑자를 기대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 쿠팡도 ‘추출 모드’로 들어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쿠팡은 한국 유통업계의 판을 바꾸고 있다. 동시에 “미국 국적 창업자가 아마존을 따라 하며 한국에서 큰돈을 벌고 있다”는 눈총도 맞는다. 그런 쿠팡이 아마존과 같은 위기에 몰릴 때 수호신 역할을 할 소비자들은 얼마나 될까. ‘플랫폼은 돈이 벌리기 시작할 때 진짜 위기가 시작된다’는 걸 창업자들이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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