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상봉[이준식의 한시 한 수]〈235〉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26일 23시 36분


아득히 이승과 저승으로 갈린 십 년. 생각 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네.
천 리 밖 외로운 무덤, 내 처량한 심사 호소할 길 없구나.
우리 만난대도 알아보지 못하리. 얼굴은 세속의 때에 절고, 귀밑머리엔 서리 내렸으니.
지난밤 아련한 꿈결 속 문득 찾아간 고향. 작은 창가에서 치장하고 있던 당신.
돌아보고도 아무 말 않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지.
생각건대 해마다 애간장 태웠을 그곳. 달 밝은 밤, 애솔나무 언덕.
(十年生死兩茫茫. 不思量, 自難忘. 千里孤墳, 無處話凄凉. 縱使相逢應不識, 塵滿面, 鬢如霜. 夜來幽夢忽還鄉. 小軒窗, 正梳妝. 相顧無言, 惟有淚千行. 料得年年腸斷處, 明月夜, 短松岡.)

―‘강성자(江城子)·을묘년 정월 이십일 밤의 꿈을 기록하다·乙卯正月二十日夜記夢)’ 소식(蘇軾·1037∼1101)


동파는 열아홉 나이에 열여섯 난 왕불(王弗)을 아내로 맞이하지만 십 년을 막 넘기고 사별한다. 관직 생활에 진입한 지 불과 3년여 만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십 년 후 꿈속에서 아내를 만난 동파는 그녀가 지금껏 자신을 위해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 또한 ‘생각 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아내가 먼 곳에 묻혀 있으니 쓸쓸함을 하소연할 길이 없고, 그 사이 세파에 시달린 육신은 초췌해졌으니 만난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 꿈속 고향에서 해후하지만 말없이 눈물만 떨구는 아내. 소나무 언덕에 자리한 무덤 위로 휘영청 밝은 달이 차라리 원망스럽고, 그간의 응어리를 실컷 뱉어내지 못한 채 무언의 눈길만 보내는 모습이 마냥 안쓰럽다.

이때 동파의 나이 마흔. 권력을 주도한 왕안석과 갈등을 겪자 자청하여 지방관을 전전할 때였으니, ‘얼굴은 세속의 때에 절고, 귀밑머리엔 서리 내렸다’는 표현이 그냥 엄살은 아닌 듯하다. ‘강성자’는 곡명, 내용과는 무관하다.

#꿈속#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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