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태원 참사 1년… 여전히 ‘평범한 일상이 기적’인 우리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27일 00시 12분


많은 젊은이들을 들뜨게 했던 핼러윈데이가 다가오지만 핼러윈을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서울 이태원 비좁은 골목길에서 안전 통제도 없이 축제를 즐기다 숨진 159명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사 1주기를 앞두고 동아일보 취재팀이 만난 피해자와 유족들은 “텅 빈 이태원을 보고 싶지 않다. 추모하고 기억하되 즐거웠던 일상을 되찾았으면 한다”고 했다.

핼러윈 참사 당시 스물다섯 나이로 숨진 신애진 씨의 어머니는 “딸 없는 삶이 여전히 막막하다. 딸이 떠난 후에야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었음을 깨닫는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딸 친구들이 준 조의금과 딸이 일하며 모아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딸의 모교에 2억 원을 기부했다. 어머니의 바람은 “더 안전한 사회가 되어 애진이가 즐겼던 축제가 계속되는 것”이다. 핼러윈 참사의 생존자인 김초롱 씨(33)도 “한동안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이들과 연대하며 버텼다”며 “내가 겪은 일을 남들은 겪지 않기를, 참사 후로도 이태원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즐거운 축제가 일상이 되기엔 정부와 국회가 약속했던 안전관리 대책의 실행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정부는 올해 1월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97가지 세부 대책의 이행률이 21.6%에 불과하다. 참사 직후 대통령이 직접 주문했던 ‘주최자 없는 행사’의 인파 관리 매뉴얼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여야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다짐하며 관련 법안 46개를 발의했으나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달랑 한 건이다. 올해도 안전사고가 줄기는커녕 늘어나고 있어 올 연말이면 지난해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평범한 일상이 기적’인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참사 당시 경찰의 총체적 부실 대응 속에 현장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며 구조 작업을 벌였던 경찰관은 지금도 “더 살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질서정연하면서도 즐거운 곳, 이태원이 다시 예전처럼 빛나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고 했다. 생존자와 유족의 바람대로 ‘안전한 핼러윈을 즐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남아 있다.
#이태원 참사#평범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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