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그제 당·정·대 고위협의회를 열고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이 자리에서 “가계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외환위기의 몇십 배 위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나서서 가계부채의 위험성에 대한 강한 경고 메시지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실제로 1800조 원을 넘어선 거대한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뇌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국의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8.1%로, 스위스에 이어 세계 2위다. 최근 5년간 빚 증가 속도는 IMF가 집계하는 26개국 중 가장 빨랐다. 지난해 3분기를 정점으로 줄어들던 가계부채는 올해 2분기 들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뒤 무섭게 늘고 있다. 이달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한 달 만에 2조50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그간의 행보를 보면 정부가 가계부채 위험 관리에 적극적인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과거 정부에서 유행한 ‘영끌’ 대출”이란 김 실장의 발언부터 적절치 않다. 최근에도 주택 가격이 바닥을 찍었다는 심리에 영끌 대출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부는 부동산 경착륙을 막는다는 이유로 15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규제를 푸는 등 부동산 규제를 완화했고, 이에 따라 집값이 반등하며 주택담보대출 급증으로 이어졌다. 영끌을 과거 정부의 일로만 치부하면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없다.
가계부채에 대한 정교한 전략 없이 주먹구구로 대응한 것도 문제다. 한국은행이 현 정부 들어서만 기준금리를 2%포인트 올리는 긴축 기조를 이어가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에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며 엇박자를 냈다. 정부가 50년 만기 주담대를 처음으로 내놨다가 관련 초장기 대출이 늘자 가계부채의 주범이라며 갑자기 중단시키는 혼선도 빚었다. “부채 증가 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거시건전성 정책을 설정해야 한다”는 IMF의 조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 대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일관되고 강력한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야 한다. 상환 능력 범위 내에서만 대출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이런저런 예외를 만들거나 부처 간 엇박자를 내는 일은 피해야 한다. 당장 고통스럽더라도 대출 규제 강화 등 선제적 대응을 통해 질서 있는 가계부채 축소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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