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략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 동결(폐기가 아니다)과 경제 제재 해제를 맞바꾸려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하노이 딜’에 전술핵무기는 포함되지 않았다. 거기에 커다란 속임수가 존재했다.
당시 협상이 실패한 뒤에도 김정은은 2020년 11월 미 대선이 끝날 때까지 트럼프와의 협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낙선을 확인한 뒤 2021년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국방 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의 개시를 공표했다. 새 계획의 가장 큰 특징은 ‘전술핵무기를 개발하고 초대형 핵탄두 생산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병행 개발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전술핵 선제 사용이라는 새로운 핵 독트린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듬해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김여정은 4월 4일 “(남한과의) 전쟁 초기에 핵 전투 무력이 동원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북한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놀라움인 동시에 천우신조(天佑神助)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흘 뒤인 2월 28일, 북한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원은 미국과 서구의 패권주의 정책에 있다’는 외무성 담화를 발표했고, 3월 2일 유엔 총회 긴급 특별회의에서는 러시아 비난 결의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 뒤를 이은 것이 김여정의 담화였다.
그러나 전술핵 선제 사용이라는 독트린은 한국으로서는 충격적이었다. 그 충격의 크기가 한국 내에서 핵무기 독자 개발론과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한 확장 억지(미국의 핵우산)에 관한 활발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또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했고, 2023년 3월 이후 한일 관계 정상화를 촉진했다. 그 귀결이 8월 18일 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중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의 결속도 강화시켰다. 흥미로운 것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2022년 11월 14일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이다. 그 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한의 장거리탄도미사일 실험이나 핵실험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나아가 중국이 책임 있는 태도를 표명할 것을 촉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담 이후 벌어진 결과는 놀라웠다. 북한은 11월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을 발사했고, 러시아와 중국은 이를 비난하기 위해 11월 21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이 중국의 동조를 얻어낸 셈이다. 이로써 북한은 신냉전의 ‘첨병’ 역할을 확인하며 러시아에 대한 지지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
이어 12월 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총회 보고에서 김정은은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 흐름이 한층 가속화될 것”이라며 “강 대 강, 정면승부의 대적(敵) 투쟁 원칙에 따라 우리의 물리력을 더욱 든든하고 확실하게 다지겠다”고 밝혔다.
이후 올해 7월 27일 열린 6·25전쟁 정전 70주년 열병식에는 러시아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참석했다. 또 9월 13일에는 김정은이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했다. 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사용될 컨테이너 1000개 분량의 탄약 등이 해상을 통해 북한에서 러시아로 운반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북-러 관계의 긴밀화는 마침내 북한을 러시아의 무기고로 만든 것이다.
불길한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다.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침투가 현실화된 지금, 이란과 시리아가 지원하는 또 다른 무장단체가 행동에 나설지도 모른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그런 국지적 분쟁의 동시다발적 확대다. 그것이 미국의 군사적 관여를 분산시키고 북한의 모험주의에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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