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근로시간 개편은 원래 이 정부 노동개혁(근로시간과 임금체계)의 한 축이었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이후 ‘노조 법치’가 끼어들었지만 양대 노총의 회계공시 참여 결정을 기점으로 법치 이슈는 끝물이다. 정부는 킬러 문항보다 어려운 본래 숙제를 풀어야 한다. 이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3대(교육, 연금, 노동) 개혁과제 중 하나였던 노동개혁, 특히 근로시간 개편이 상반기에 왜 좌초됐는지 복기할 필요가 있다.
①메시지=올해 3월 6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근로를 가능하게 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불과 9일 뒤(15일) 윤 대통령이 “60시간 이상 근로는 무리”, “상한 캡을 씌우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며 뒤집었다. 이후 20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상한선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며 대통령 발언을 반박하는 듯한 입장을 밝혔다. 그랬더니 다음 날 윤 대통령이 “상한을 정해야 한다”고 또 뒤집었다. 장관, 대통령실 관계자, 대통령이 서로의 말을 되치기하는 과정을 보면서 도대체 뭐 하자는 건가 싶었다. 정부 안에서 메시지가 정리되지 않아 정책 실패로 이어진 대표 사례였다.
②현실성=정부는 근로시간제가 바뀌면 직장인에게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예금 계좌에서 내 돈 꺼내 쓰듯 근로시간을 모았다가 장기간 휴가로 쓸 수 있다는 말인데…. 현장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몰아서 일하게 될 것을 의심하는 국민은 없었고, 몰아서 쉴 수 있을 거라 믿는 국민도 없었다. 이 구상을 만든 고용부조차 공무원이 휴가를 다 못 쓴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애환을 담은 유튜브 영상은 불티났다. “여름내 몰아서 일했으니 한 달 쉬겠습니다”, “그럼 자네 업무는 누가 해?”, “정부가 그렇게 해도 된답니다”, “그건 대기업 이야기고. 우리는 중소잖나”. 현실성 없는 ‘한 달 유럽 휴가’보다는 초과근로에 상응하는 급여, 수당을 인상하고 이를 철저히 지급하도록 법제도를 정비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③의지=근로시간제를 개편하려는 이유의 본질은 기업이 원하기 때문이다. 일감, 수출 주문이 특정 시기에 폭증하는 산업은 그 타이밍에 소화 못 하면 매출에 타격을 입고 경제, 고용 타격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제조업,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이런 요구가 쭉 있었다. 그런데 이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소중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돌봐야 할 어린 자녀가 있는 3040 직장인의 가치나 삶의 형태와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고심 끝에 필요한 개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면 솔직하게 취지를 밝히고 떨어지는 지지율에도 좌고우면하지 말았어야 했다. 양쪽의 박수를 받을 순 없다.
설문 결과 발표를 앞둔 고용부는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다. 발표 시기를 미루고 또 미뤘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무산된 연금개혁처럼 눈치보기용 ‘맹탕 개편안’이 나올 우려도 제기된다. 개혁을 할지 말지, 한다면 어떤 계획을 내놓을지는 최종적으로 정부가 결정하고 책임 질 일이다. 하나는 분명하다. 이번에도 실기(失期)하면 세 번째 기회는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