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 같은 결혼 이야기는 동서고금 어디에나 존재한다. 18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는 당대 상류층의 결혼 세태를 풍자한 ‘유행하는 결혼’ 연작을 그려 큰 인기를 끌었다. ‘둘만의 밀담(1743년·사진)’은 총 여섯 점으로 구성된 연작 중 두 번째 그림이다.
화면에는 이제 막 결혼한 상류층 젊은 부부가 등장한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림과 고급 가구로 장식된 호화로운 실내가 난장판이 됐다. 남편 머리 위 벽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다.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지만 자다가 깬 하인들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집안을 치우고 있다. 지난밤 남편은 외도하고 들어와 힘이 빠진 상태고, 강아지가 그의 재킷 주머니에 꽂힌 여자 모자에서 외도의 냄새를 맡고 킁킁대고 있다. 아마도 안주인에게 알려주려는 듯하다. 그러나 아내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아내 역시 카드놀이를 하며 밤새 파티를 열었고, 다른 남자와 정을 나눈 지 얼마 안 된 터라 두 다리를 벌리고 나른한 기분을 즐기는 중이다. 서로에게 관심도 없는데 이들은 왜 결혼했을까? 그에 대한 답을 화가는 첫 번째 그림에서 보여준다. 남자는 사치와 무분별한 투자로 몰락 직전에 내몰린 귀족의 아들이다. 여자는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돈만 많은 상인의 딸이다. 여자는 막대한 결혼 지참금 덕에 귀족 신분을 얻었고, 남자 집안은 그 덕에 파산 위기에서 벗어났다. 한마디로 서로의 필요에 의한 정략결혼이었다.
부부는 결국 어떻게 됐을까? 화가는 이어지는 그림에서 부도덕한 정략결혼의 끝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방탕한 생활로 매독에 걸린 남편은 부인이 외도하는 장면을 목격하지만 오히려 그 남자에게 살해당한다. 자신의 정부가 살인죄로 사형을 받게 되자 여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사랑이 아닌 돈과 신분 상승을 위해 선택한 결혼. 그 끝이 좋을 리 없다는 경고를 화가는 그림을 통해 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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