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전보는 나로서도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주스웨덴 북한) 대사와 내가 이스라엘 대사를 만나 극비리에 미사일 거래 협상을 진행하라는 지시였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회의원은 회고록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관 서기로 근무하던 시절인 1999년 1월 그곳 이스라엘 대사와 만나 협상을 벌인 일화를 소개했다. 평양의 지시에 따라 “우리 미사일 기술에 이란 등 중동 국가의 관심이 많다. 이스라엘이 현금 10억 달러를 주면 미사일 기술을 수출하지 않겠다”며 거래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 측은 현금 대신 물자를 제공할 뜻을 밝혔으나 북한이 끝내 현금을 고집하면서 협상은 실패했다고 썼다.
하지만 이스라엘과의 협상은 이미 6, 7년 전 진행됐던 프로젝트였음을 태 의원은 몰랐던 듯하다. 이란이 북한 노동미사일을 구매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먼저 접근한 쪽은 이스라엘이었다. 협상은 1992년 10월 이스라엘 관계자의 평양 방문으로 시작됐고, 이후 이스라엘과 유대계 기업들의 10억 달러 투자와 광업 기술지원 같은 제안이 활발히 오갔다. 하지만 은밀하게 진행되던 협상은 미국이 개입하면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뉴욕타임스 1993년 6월 20일자)
그럼에도 이스라엘식 거래 구상은 북한이 미사일 개발과 판매를 포기하면 그 대가로 미국은 북한 인공위성을 대신 쏴주고 매년 10억 달러어치 식량을 3년간 제공한다는 2000년 북-미 미사일 협상안의 큰 틀로 이어졌다. 태 의원이 했던 역할은 미국 측에 과거 북한과 이스라엘의 ‘10억 달러’ 거래를 상기시키려는 일종의 밑밥 깔기였던 셈이다.
거의 성사 단계까지 갔던 북-미 미사일 협상이 결국 실패로 끝난 뒤에도 이스라엘은 북한의 중동 무기 판매가 자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특히 남북 간에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는가 싶으면 한국 정부를 향해 북한이 중동 이슬람 국가나 무장단체에 무기를 팔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하곤 했다. 우리 정부 관계자가 “지칠 줄 모르는 후츠파(당돌한 대담성) 정신”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스라엘은 흔히 골리앗 국가들에 포위돼 외롭게 싸우는 다윗 국가로 묘사된다. 이스라엘은 늘 이런 지정학적 불안을 호소하며 자국 안보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월등한 재래식 전력에다 핵무기까지 보유한,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 대국이다. 위기 때면 언제든 달려와 주는 미국도 있다. 그런 힘과 뒷배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은 주변 세력의 위협을 감지하기 무섭게 그 싹부터 잘라버리는 예방전쟁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이스라엘이 무장세력 하마스의 대규모 기습공격에 맥없이 당한 뒤 가자지구에 대한 본격 지상전에 들어갔다. 인도주의적 재앙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도, 이란 등 주변국이 참전하면서 중동 전역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스라엘 정부엔 통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쌓아온 안보 신화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테러 집단에 몇 배 가혹한 응징을 가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을 미국조차 말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로서도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다. 미국의 베트남전쟁 종결 협상자였던 헨리 키신저는 “정규전은 이기지 않으면 지지만, 게릴라전은 지지 않으면 이긴다”고 했다. 이 전쟁은 하마스엔 전멸을 피하며 버티는 투쟁이지만 이스라엘엔 확실한 승리를 거둬야 하는 결전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완전히 장악한다 해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평화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더 깊은 분쟁의 늪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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