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국민 60여 명과 함께 진행한 타운홀 형식의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은행의 대출 규제와 금리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은행들은 갑질을 많이 한다”며 “독과점 행태를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카카오택시에 대해서도 콜 수수료 정책 등이 ‘약탈적’이고 ‘아주 부도덕한 행위’라며 “반드시 제재해야 한다”고 했다. 택시기사와 제조업체 종사자의 고충 호소에 답하는 과정에서 내놓은 발언이다.
빚 부담에 짓눌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고통이 가중되는데도 은행들이 고금리에 기대 손쉽게 수익을 챙겨 온 현재 금융업계 구조는 고강도 개선 조치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성과급과 퇴직금 잔치까지 벌인 것을 놓고 사회적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택시의 경우도 콜 몰아주기와 불공정 약관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아 왔다. 윤 대통령이 모처럼 응한 국민과의 소통 자리에서 이런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개선 노력을 밝힌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조적, 체계적 해법 논의에 앞서 대통령의 말이 앞서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는 건 우려스럽다. 여러 분야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어 한쪽을 건드렸다가 다른 쪽에서 의도치 않았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게 정부 정책이다. 금리만 해도 가계 및 기업 부채, 인플레이션, 환율, 미국 금리 정책 등 변수들이 얽혀 있다. 대통령이 거친 표현으로 금융업계를 낙인찍듯 몰아붙이는 방식으로는 되레 시장 혼란을 유발하거나 대응 효과를 떨어뜨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
크고 작은 현안마다 대통령이 즉각 반응하거나 매번 직접 나서면 자칫 국정 운영 시스템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정 기업을 찍어서 공격하는 것도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국가 지도자가 할 일은 아니다. ‘지시’로 받아들여지는 한마디에 관련 부처와 기관들이 우르르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 경우의 연쇄적 파장 또한 적잖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R&D 카르텔’ 한마디가 16%가 넘는 예산 삭감과 연구 인력 감축, 프로젝트 축소 등으로 이어진 사례를 보지 않았나. 민생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를 열되 구체적인 해법은 전문가와 실무자 의견을 들어가며 차분하고 정교하게 찾아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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