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0인 미만 연구개발(R&D)·건설·일부 제조업 등 특정 업종에 한해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3월 ‘주 69시간 근무’ 논란에 부딪쳐 멈춰선 근로시간 개편의 대상을 좁히고, 직종·업종별로 차이를 둬 노동개혁 논의에 다시 불을 지피려는 모양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몇몇 업종을 우선 적용 대상으로 검토하려는 건 경직적 주 52시간제로 인한 어려움이 큰 부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소프트웨어 업체의 경우 개발 시한을 맞추지 못하면 사업에 타격을 받는다. 수주량, 계절에 따라 일감의 진폭이 심한 건설업이나 조선업, 에어컨 산업도 마찬가지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스타트업들은 현실적으로 근로시간 규제를 지키는 게 불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다.
급할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초과근무 시간을 몰아서 휴가로 사용하게 되면 이런 기업들은 숨통이 트이게 된다. ‘기본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의 주 52시간제에서 1주 단위인 연장근로 관리기간을 월·분기·반기로 늘리는 개편안을 정부가 올해 초 내놨던 이유다. 초과근무 시간을 주 단위로 관리하는 건 선진국 중 한국이 유일하고, 대다수 나라들은 반년, 1년 단위로 관리해 기업의 인력 운용에 융통성을 두고 있다.
이런 방안에 대한 청년 근로자들의 우려는 이해할 만하다. 회사는 ‘나중에 쉬게 해 줄 테니 지금 더 일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휴일을 찾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년 내내 주 69시간 일하게 될 것’이란 과장된 주장이 득세한 배경이다. 결국 대통령실이 “주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며 발을 빼 논의가 좌초됐다.
저출산·고령화의 흐름을 단기간에 뒤집긴 어렵다. 그런 만큼 갈수록 약화되는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되살리기 위해선 노동의 효율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간 근무하더라도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렇다 해도 청년을 비롯한 근로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근로시간 개편은 성공하기 어렵다. 노동개혁 ‘2라운드’를 시작하기에 앞서 정부는 ‘결국 일 더 시키려는 꼼수’라고 생각하는 근로자들의 의심을 깨끗이 털어낼 실질적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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