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좋아하십니까? 음악과 여색을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그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냐에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습니다.”
―남명 조식의 ‘을묘사직소’ 중
단순한 변증법이나 말장난이 아니다. 남명 조식이 당대 최고 절대 권력자인 왕에게 목숨을 걸고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묻고 국가의 존망을 말하는 이 문장에는 그의 자신감, 떳떳함, 강직함과 확신이 가득 담겨 있다. 남명은 1555년 12월 12일 조선의 제13대 왕인 명종이 하사한 벼슬을 거절하며 경남 합천군 뇌룡정(雷龍亭)에서 사흘간 이 문장을 포함한 상소문 ‘을묘사직소’를 쓴다.
왕이 벼슬을 내렸는데 거절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큰 죄였다. 예의 바르게 거절해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시대였을 텐데, 남명은 을묘사직소에 당대의 국가적 현실과 정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시국 선언문을 담았다.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왕의 능력을 비판하고, 왕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에 대해 패륜적인 말도 서슴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충언한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현시대에 봐도 파격적이다.
남명은 처사로 살며 평생 벼슬을 하지 못하였지만, 지리산을 좋아해 12번이나 오르고 지리산 등산 루트를 개척하고 기록을 남겼던 지리산 산행의 선구자이다. 천왕봉(1915m)이 보이는 곳에 집(山天齋·산천재)을 짓고 살면서 선비로서 지리산의 기백과 기개를 깨치고자 노력했으며, 기후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신체와 마음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교훈을 얻고자 했다.
필자 역시 지리산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살고 있다. 이곳에서 작고 사소한 것, 감정의 변화를 버리고, 큰 생각과 너른 마음을 배운다. 남명도 이곳을 통해 왕에게 대등하게 말할 수 있는 대담함을 배운 게 아닐까. 수많은 탐방객이 지리산을 찾고 있다. 많은 탐방객이 남명의 기백과 기개를 담아 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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