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의 지방소멸대응기금 제도는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계획을 평가해 2022년부터 매년 1조 원씩 10조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동아일보 취재팀이 분석한 결과 기초단체 107곳 중 19곳은 올해 기금 집행률이 2%도 안 되는데 내년도 예산으로 1040억5000만 원을 배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7곳은 기금 집행률이 0%임에도 260억 원을 추가로 받게 됐다. 막대한 세금이 주먹구구로 뿌려지고 있는 것이다.
강원 양양군은 양양공항 옆에 화물터미널을 건립한다며 112억 원을 받아갔지만 정기편 운항이 끊기고 사업이 중단돼 기금을 한 푼도 못 썼다. 그런데도 내년도 예산으로 64억 원을 받았다. 경기 포천시는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 건립용 예산 35억 원을 주민 반대로 한 푼도 못 쓰고도 16억 원을 추가로 받았다. 부산 동구는 폐교 부지에 청소년 문화시설을 건립한다며 112억 원을 받았는데 국토교통부가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어 제동이 걸렸다. 그런데도 64억 원을 또 배정받았다. 사업의 타당성을 따져보지도 않고 예산부터 타내고 보자는 지자체와 이를 걸러내지 못한 행안부 모두 예산 낭비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사업 초기부터 당초 목적과는 달리 지자체들의 눈먼 돈 나눠 먹기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지원 대상이 서울과 세종을 제외한 15개 시도와 인구 감소가 심각한 107개 기초단체까지 122개로 지난해까지 접수된 투자계획서만 1691건이다. 단기간에 많은 계획서를 심사하다 보니 옥석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홍보기획사에 수천만 원을 주고 그럴듯한 계획서를 만들어내는 지자체도 많다고 한다. 정책을 수립할 역량도 없는 지자체에 예산을 지원한들 무슨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나. 사후 집행 내역 점검까지 부실하게 이뤄지니 토호 세력의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이다.
정부는 2047년이면 전국의 229개 시군구 모두 인구학적으로 소멸위험 단계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지역별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광역화 발전 전략을 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저출산 추세가 굳어진 상황에서 인구소멸 대책이란 다른 지역의 주민 빼 오기나 다름없다. 100개도 넘는 지자체에 기계적으로 예산을 나누는 것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식 소모적인 경쟁에 헛돈 쓰는 일이 될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