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급여를 연금으로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퇴직을 앞둔 직장인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특히 장기근속하고 정년퇴직 혹은 명예퇴직을 하면서 퇴직급여로 목돈을 수령하는 이들이 이 같은 질문을 자주 한다. 퇴직급여 규모가 큰 만큼 퇴직소득세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퇴직소득세 부담을 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퇴직급여를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 같은 연금계좌에 이체하고 연금으로 수령하는 것이다.
퇴직자가 퇴직급여를 일시에 현금으로 수령하겠다고 하면 사용자는 퇴직소득세를 먼저 징수하고 남은 돈만 지급한다. 반면 퇴직자가 퇴직급여를 연금계좌에 이체하면, 세금을 떼지 않고 퇴직급여를 고스란히 이체해 준다. 연금계좌에 이체한 퇴직급여를 ‘이연퇴직소득’이라 한다. 이연퇴직소득은 55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는데, 이때는 퇴직소득세율의 70%(11년 차 이후 60%)에 해당하는 연금소득세를 부과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보자. 퇴직자 A 씨(58)가 퇴직급여 2억 원을 일시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로 2000만 원을 납부해야 한다. 이 경우 A 씨의 퇴직소득세율은 10%가 된다. 만약 A 씨가 퇴직급여를 일시에 수령하지 않고, 연금계좌에 퇴직급여 2억 원을 이체한 뒤 매년 2000만 원씩 10년 동안 연금을 수령하면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할까.
앞서 A 씨의 퇴직소득세율은 10%였다. 따라서 연금을 수령할 때는 퇴직소득세율의 70%에 해당하는 7%를 연금소득세로 납부하면 된다. 한 해 2000만 원을 연금으로 수령하면 연금소득세로 140만 원의 세금을 납부하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10년 동안 매년 2000만 원씩 연금을 수령하며 세금을 납부하면 총 1400만 원이 된다. 퇴직급여를 일시에 수령할 때 퇴직소득세를 2000만 원 냈던 것과 비교했을 때 연금으로 수령하면 세금을 600만 원, 즉 30%나 덜 내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하면 세금 부담을 덜 수 있으니 퇴직소득세 부담이 큰 장기근속자와 명예퇴직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하려면 먼저 연금계좌부터 선택해야 한다. 연금저축과 IRP 중 어디로 퇴직급여를 이체하는 것이 더 유리한지 알아보자.
● 퇴직 당시 나이를 고려해야
먼저 퇴직급여의 종류와 퇴직자의 나이부터 살펴야 한다. 법정퇴직금부터 살펴보자. 근로자가 55세 이전에 퇴직하면 법정퇴직급여를 IRP에 이체해야 한다. 일시금으로 수령하거나, 연금저축에 이체할 수는 없다. 다만 퇴직급여가 300만 원이 안 되거나, 퇴직급여 담보대출을 상환해야 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현금 수령이 가능하다. 55세 이후에 퇴직하는 경우에는 법정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할 수도 있고, 연금저축과 IRP에 이체한 다음 연금으로 수령할 수도 있다.
정년보다 일찍 퇴직하는 근로자는 법정퇴직금 외에 명예퇴직금을 수령하기도 한다. 명예퇴직금은 나이와 상관없이 일시금으로 수령할 수도 있고, 연금저축과 IRP에 이체한 다음 연금으로 수령할 수도 있다. 직장인 이외에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들도 조기퇴직을 하면서 명예퇴직금을 수령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도 명예퇴직금을 연금저축과 IRP에 이체하고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다. 다만 직장인들처럼 퇴직급여를 바로 연금저축이나 IRP 계좌로 이체할 수는 없다. 일단 근무처에서 명예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지급하면서 퇴직소득세를 원천징수한다. 다만 명예퇴직금을 수령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연금저축과 IRP에 이체하면 이미 낸 퇴직소득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 이렇게 연금계좌에 이체한 명예퇴직금을 연금으로 수령하면 직장인 퇴직자와 마찬가지로 퇴직소득세를 30%가량 감면받을 수 있다.
● 어떤 금융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퇴직급여를 어떤 금융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IRP에 퇴직급여를 이체하면 원리금 보장 상품부터 실적배당 상품까지 다양한 금융 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는 은행, 저축은행, 우체국 예금이 있다. 이 밖에 보험사의 이율보증보험(GIC)과 증권사의 주가연계 파생결합사채(ELB)도 원리금이 보장되는 금융 상품이다.
실적배당 상품으로는 펀드와 실적배당보험이 있다. 이 밖에 주요 증권사에서 IRP 적립금을 국내 증시에 상장된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증권(ETN), 리츠, 인프라펀드에 실시간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일부 은행과 보험사도 신탁을 활용해 적립금을 ETF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실시간 매매가 되지 않고 신탁 수수료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연금저축은 펀드, 보험, 신탁으로 나뉜다. 연금저축신탁은 현재 신규 판매가 중단됐고 연금저축보험은 금리연동형 상품이다. 연금저축펀드에서는 다양한 펀드와 국내 상장된 ETF, 리츠에도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IRP와 달리 연금저축펀드에서는 원리금 보장 상품과 ETN에는 투자할 수 없다.
위험자산 투자 한도도 살펴야 한다. IRP 가입자는 적립금 중 70%까지만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대표적인 위험자산으로는 주식형과 주식혼합형 펀드와 ETF, 하이일드채권펀드, 리츠 등이 있다. 나머지 30%는 원금 보장 상품이나 채권(혼합)형펀드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해야 한다. 연금저축펀드 가입자는 이 같은 위험자산 투자 한도 적용을 받지 않고 투자할 수 있다.
● 수수료는 얼마나 되나
수수료도 따져봐야 한다. 연금저축펀드는 별도로 계좌관리 수수료를 받지 않지만 IRP는 계좌관리 수수료를 부과한다. 수수료는 금융회사와 적립금 규모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평균 적립금의 0.25% 정도다. 하지만 IRP 가입자가 모두 수수료를 내는 것은 아니다.
최근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IRP 계좌를 개설하거나 퇴직급여를 IRP에 이체하는 경우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금융회사가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퇴직급여를 연금저축과 IRP에 이체할 때는 수수료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
퇴직급여를 ETF에 투자하려는 사람은 매매 수수료도 따져봐야 한다. 연금계좌에서 ETF를 거래할 때는 매매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IRP에서 ETF를 사고팔 때는 매매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따라서 ETF 매매가 잦은 투자자라면 연금저축펀드보다는 IRP가 적합할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