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노인대국’ 일본의 ‘간병 대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13일 00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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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 2017년 일본에선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일본 NHK가 방영한 ‘간병살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오랜 간병에 지쳐 가족의 목숨을 빼앗는 간병살인은 일본에선 연간 40여 건, 거의 1주에 1번꼴로 발생한다고 한다.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착한 배우자, 효자, 효녀가 결국 가해자가 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제 이런 참극은 특정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 10명 중 3명이 노인인 ‘노인 대국’ 일본은 간병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지 오래다. 이달 초 일본 내각부는 2050년에 1인당 평균 간병비가 2019년에 비해 75%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나이가 들수록 간병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는데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의 인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2년 뒤부터 거대한 폭풍이 다가온다. 인구 비중이 큰 단카이 세대(1947∼19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75세를 넘기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런 상황을 일찌감치 준비하긴 했다. 2000년 개호(介護·돌봄, 간병) 보험제도를 도입해 고령자의 간병을 사회 전체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모든 국민이 간병 서비스를 필요로 할 때 급여의 70∼90%를 지원한다. 하지만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에 비해 간병비 부담이 4배로 증가해 갈수록 힘에 부치고 있다. 돌봄 비용 급증에 대비해 보험료를 인상하고, 돌봄 인력 확보를 위해 간병인의 급여를 올리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빠르게 늙어가고 있는 한국도 간병 부담은 남의 일이 아니다. 양질의 요양시설이 부족하고 특히 간병은 가족 내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 탓에 짐이 무겁다.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老老) 간병을 넘어 병자가 병자를 간병하는 상황도 흔하다. 이를 견디다 못한 간병살인이나 동반자살의 비극도 늘고 있다. 올해 4월 서울에선 폐암과 파킨슨병 등을 앓던 아내를 5년 6개월 동안 돌보던 60대 남성이 아내를 숨지게 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오랜 간병은 경제적 파산으로도 이어진다. 간병인을 고용해야 하는데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경우 간병비가 월 400만∼500만 원까지 든다. 돈을 벌어도 고스란히 간병비로 들어가니 가족 누군가는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베이비부머의 상징인 ‘58년 개띠’가 올해 65세 대열에 들어섰고 내년에는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한다. 이제라도 간병을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20여 년 전부터 준비한 일본도 아직 완전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우리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노인#고령화#일본#간병#요양#간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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